미안과 불안

오래 키우던 로즈마리가 죽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이것도 작년 10월 말의 이야기다. 애도마저 늦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미안은 불안의 가능태이다. 아직 편치 않다는 말은 곧 편해지리라는 희망을 함께 담는다. 불안은 그러한 희망이 사라진 상태, 그냥 편치 않다는 이 마음이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음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이다. 로즈마리를 죽인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죄송을 미안의 높임말쯤으로들 아는데, 죄송이란 내가 죄를…

자격증 들이밀기 전에 일부터 하시라!

수백 년 전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야만의 시대에 ‘국가공인 해적단’이 있었다. 사략선이라 불리는 이 배들은 왕의 허락을 받고 공해상의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했다. 노획물을 왕과 5:5로 나누기만 하면 이들에게는 해적질할 ‘자유’가 보장됐다. 이 기묘한 ‘자유’를 일컫는 말이 라틴어로 licentia[리켄티아]이다. 우리가 라이센스라 부르는 자격증이 이 리켄티아에서 왔다. 사실 국가가 처음부터 해적질할 자유를 공인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사의 무대가 지중해를…

집필 작업을 시작하는 체계적인 방법

글쓰기가 제일 힘들다. 글을 안 쓸 때에는 ‘아, 이런 걸 쓰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쏟아지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펜이나 자판을 잡으면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쓰는 건 많은데, 쓸 때마다 지우고 싶어져서 진전이 없다. 2025. 12. 6.자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칼럼 ‘아침에 들어낸 쉼표 하나를 오후에 되살렸다‘ 어제도 글 한 편을 동료에게 보내기로…

겸손한 삶

겸손하게 살기로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큰 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장차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장 할 수 없는 일을 외면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생각만 해두는 거다. 아이 밥을 먹이면서, 집을 정리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만 하는 거다. 시간이 나면 하고 아니면 말고다. 몸과 마음과 사랑하는…

2026. 1. 1.- 1. 12. 요약생활 275-280

2026. 1. 1. 목. 맑고 추움 올해 하고 싶은 것들. 노는 시간을 정해서 놀기. 아내와 매주 일요일 저녁에 한 주를 돌아보고 다음주를 내다보는데, 그 시간 이후에만 자기 전까지 놀 것이다. 2026. 1. 12. 추가. 놀고 싶어서 안 되겠다. 수요일 저녁 하루 더 놀기로 했다. 서예: 2월 4일 입춘대길, 음력 1월 22일 할아버님 제사, 9월 25일…

2025. 11. 30.-12. 31. 요약생활 265-274

2025. 11. 28. 금. 추움 아내와 과메기를 먹었다. 살다 보면 오히려 세계가 좁아지는 경우가 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어두다가,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결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그렇다. 아이를 학대한다는 금수들─사랑하는 동물들에게 미안한 표현이니 정정하자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다─이 대표적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 보니,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미치면 그럴 수도 있겠다…

2025. 10. 6.-11. 24. 요약생활 249-264

2025. 10. 6. 월. 장마 같은 비 추석 당일이다. 새벽부터 처갓집 갈 준비를 했다. 처갓집 차례를 지냈다. 아내가 준비한 지음의 옷에 가족들이 모두 귀여워했다. 제사 음식이 맛있었다. 작은어머님은 늘 고생하신다. 지음이 외할아버지를 좋아했다. 외증조할머니와 교감하며 옹알이를 했다. 외작은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었다. 오래 있고 싶었으나 할머님께서 일찍 돌아가자 하셔서 집에 왔다. 지음을 돌보고 피곤해 한숨 잤다. 작업을…

2025. 9. 22.-10. 5. 요약생활 234-248

2025. 9. 22. 월. 맑음 출근해 일했다. 아들이 새벽에 깨지 않아 아내가 푹 잤다. 비교적 조절된 하루를 살았다. 오래된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각자의 파도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잠깐 붙잡고 숨쉴 부유물이 되는 셈이다. 이사 계약 때문에 임대인 가게에 방문했다. 전자계약 시스템이 어렵게 되어 도와드렸다. 사실 이자 혜택을 받기 위해 내가 도움을 청했다고 해야 맞다.…

2025. 9. 17.-21. 요약생활 229-233

2025. 9. 17. 수. 비온 뒤 갬 유당불내증은 성장이 아니라 변신의 징후이다.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다. 변신한다. 출근해 일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부조리라는 이름을 잘 붙인 듯하다. 부조리와 힘께 사는 자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성실함 아니냐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읽다 보니 카뮈가 정확히 “성실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원문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들은 잘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