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때였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내가 큰 잘못을 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빗자루 들고 나 대신 바닥을 때리시며 크게 야단치던 때였는데, 나는 어머니의 고함과 서슬퍼런 빗자루에 놀라 엉엉 울면서 구석에 쭈그러져 있었다. 그때 따르릉, 하고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께서는 분노 모드를 일시정지하시고 전화기로 가셨다. "여보세요옹~?" 나는 평소 맑고 예쁜 어머니의…
조각 글들
연재 1
어릴 때부터 의아한 게 하나 있다. 화장실은 왜 화장실인가. 화장실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고약해서 비밀스럽고 사적인, 그러면서도 동시에 인간이라면 무릇 하루에 두세 번씩은 요란하게 해치우는, 똥오줌을 누는 일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화장실에서 간혹 화장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는 다른 일로 바쁘다. 그나마 화장과 유사한 일은 용변 직후의 절차일 것이다. 입술과 항문은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시간의 항복강도
우리는 시간의 모양을 상상할 수 없어서 직선으로 비유하곤 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인데 한 길로 흐르는 것이다. 갈라지지 않고 모이지도 휘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흐른다. 여기서 몇몇 사람은 태초의 유무를 두고 원점이 있는 반직선이냐 아니면 과거도 미래만큼 끝없이 소급한다는 직선이냐로 나뉘지만, 여전히 시간의 모양은 곧은 듯하다. 나는 이따금 시간을 만질 수 있다면 어떤 촉감일까 그려본다.…
2026. 1. 13.- 8. 28. 요약생활 281-295
2026년 초부터 중반까지의 일상을 기록한 글이다. 육아와 일, 철학 공부 등에서의 고민과 갈등, 아내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감정적 문제들이 담겨 있다.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며 성장하려는 노력을 나타내며, 기쁨과 좌절을 함께 경험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독서노트]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POLITICS AS A VOCATION, POLITICS AS A VOCATION, REPRINTED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TRANSLATED,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H. H. GERTH and C. WRIGHT MILL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46. 정치의 의미 ‘Every state is founded on force,’ said Trotsky at Brest-Litovsk. That is indeed right.p.3. Today, however, we have…
이탈과 충동의 통제
오늘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투고한 논문이 게재불가 판정을 받았다… 속상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모자란 점이 많은 글이었다.수정게재 의견을 주신 한 분은 마치 PT를 해주시듯이 조목조목 개선방안을 제안해주셨다. 신선한 관점이라고, 꼭 수정해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감사하다. 주신 수정의견 잘 반영해서 더 멋진 글로 다듬어야지. 데뷔곡만 부르고 앨범을 내지 못한 만년 신인 가수처럼 나이만 먹는구나.하지만…
미안과 불안
오래 키우던 로즈마리가 죽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이것도 작년 10월 말의 이야기다. 애도마저 늦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미안은 불안의 가능태이다. 아직 편치 않다는 말은 곧 편해지리라는 희망을 함께 담는다. 불안은 그러한 희망이 사라진 상태, 그냥 편치 않다는 이 마음이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음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이다. 로즈마리를 죽인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죄송을 미안의 높임말쯤으로들 아는데, 죄송이란 내가 죄를…
자격증 들이밀기 전에 일부터 하시라!
수백 년 전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야만의 시대에 ‘국가공인 해적단’이 있었다. 사략선이라 불리는 이 배들은 왕의 허락을 받고 공해상의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했다. 노획물을 왕과 5:5로 나누기만 하면 이들에게는 해적질할 ‘자유’가 보장됐다. 이 기묘한 ‘자유’를 일컫는 말이 라틴어로 licentia[리켄티아]이다. 우리가 라이센스라 부르는 자격증이 이 리켄티아에서 왔다. 사실 국가가 처음부터 해적질할 자유를 공인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사의 무대가 지중해를…
잠긴 글: 단수도 복수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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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작업을 시작하는 체계적인 방법
글쓰기가 제일 힘들다. 글을 안 쓸 때에는 ‘아, 이런 걸 쓰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쏟아지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펜이나 자판을 잡으면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쓰는 건 많은데, 쓸 때마다 지우고 싶어져서 진전이 없다. 2025. 12. 6.자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칼럼 ‘아침에 들어낸 쉼표 하나를 오후에 되살렸다‘ 어제도 글 한 편을 동료에게 보내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