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들이밀기 전에 일부터 하시라!

수백 년 전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야만의 시대에 ‘국가공인 해적단’이 있었다. 사략선이라 불리는 이 배들은 왕의 허락을 받고 공해상의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했다. 노획물을 왕과 5:5로 나누기만 하면 이들에게는 해적질할 ‘자유’가 보장됐다.

이 기묘한 ‘자유’를 일컫는 말이 라틴어로 licentia[리켄티아]이다. 우리가 라이센스라 부르는 자격증이 이 리켄티아에서 왔다.

사실 국가가 처음부터 해적질할 자유를 공인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사의 무대가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확장되자, 해군력이 닿지 않았던 망망대해에서는 해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에 국가는 민간 상선의 자위권을 보장하기 위해 ‘해적을 공격할 자유’를 인정해주었다. 노획물의 절반을 국왕에게 바친 것은 자위권을 인정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쯩’을 앞세운 사략선은 두려울 게 없었다. ‘공해상의 선박을 공격할 자유’로 점차 왜곡하더니 ‘해적을 잡을 자유’를 ‘해적질할 자유’로 둔갑시킨 것이다. 국왕과 5:5로 나눠도 남는 장사였다.

이들의 자격증을 ‘자유’라고 불러도 될까? 오히려 ‘방종’이라 불러야 더욱 정확하지 않을까?

나는 웬만하면 전문가를 인정하고 존중을 표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런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갖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높은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신 그만큼의 윤리가 요구된다.

그런데 몇몇 치들이 ‘쯩’을 앞세워 일을 엉망진창으로 해도 맹목적으로 존중해주기를 원한다. 나는 꽤 짓궂어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최근 몇 개월 동안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변호사와 기싸움을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오만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자격증 있는 사람에게는 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에도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는 듯이 행동한다.

오늘은 아주 웃긴 사례를 발견했는데, 변호사가 판례를 정반대로 인용한 것이다. 회사 구조상 내가 하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변호사의 검토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변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위법, 위법, 위법!’이라고 검토의견을 보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결론이 났나 자세히 보니 대법원 판례 세 개를 자랑스레 인용한 것이 아닌가?

나는 당연히 그 판례를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변호사가 맞는 지적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 프로젝트도 더욱 예리하게 벼려질 것이고, 나 스스로도 좋은 배움거리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허탈할 정도로 의견서가 엉망이었다. 변호사가 인용한 판례에 따르면 오히려 내 프로젝트가 매우 적법하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이 불쌍한 중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주 재미나게도, 이 자는 내 프로젝트가 위법이라며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고성을 지르고 내게 ‘야, 너’ 거리는 반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나도 뭐라고 하려다가, 그냥 참았다. 그 어렵다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보니 그냥 참지 말걸 그랬다. 이렇게 엉망일 줄 진작 알았으면 말이다.

우리나라 직업윤리가 문란해진 데에는 자격증 가진 자들의 방종도 한몫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쁘띠 부르주아에 대한 폄하가 심하다. 가진 거라곤 자격증 하나뿐인 치들이 마치 유서깊은 부르주아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걸 보면 기가 차서 웃음만 나올 때가 있다. 마취로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나 제대로 된 의견서 하나도 못 쓰는 변호사처럼 자격 미달인 자들의 면허를 취소하지 못하고 같은 직능집단이라고 싸고 도는 모습을 볼 때가 특히 그렇다.

이런 요지경은 단지 전문가집단의 자정작용 실패로 볼 일이 아니다. 방종으로 보아야 한다. 자위권 보장 면허가 해적질 허가증으로 둔갑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때마침 키케로가 <국가론>에서 정확히 방종의 의미로 리켄티아를 쓴다. 플라톤이 <국가> 제9권에서 민주주의의 단점으로 언급했던 엑수시아[ἐξουσία]가 바로 이 의미이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인간은 좋은 행위로 끝없이 자기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자격증은 한때의 성과가 물화된 사물일 뿐이다. 오히려 자격증은 평가의 기준을 높인다. 이미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아이보다 박사 학위증을 가진 어른에게 더 위대한 행위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과거 성과에 안주한 나머지 위대해지기를 그친, 그래서 열등해지기를 바라는 듯이 행위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 쁘띠 부르주아들이 다시 존중받고 싶다면, 직업윤리부터 회복해야 한다. 자격증 들이밀기 전에 일부터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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