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8. 금. 추움
아내와 과메기를 먹었다.
살다 보면 오히려 세계가 좁아지는 경우가 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어두다가,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결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그렇다. 아이를 학대한다는 금수들─사랑하는 동물들에게 미안한 표현이니 정정하자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다─이 대표적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 보니,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미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음과 함께 사는 지금은 그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이, 어불성설임을 안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우리네 조상들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내를 때릴 힘이 있다면 나를 죽이겠다. 흔히들 ‘죽을 힘으로 살지’ 하는 심정과 똑같다. 자살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자살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날 밤을 새다시피 해서 저녁잠을 잤다.
2025. 11. 29. 토. 추움
오전에 아이를 돌보고 아내와 운동했다. 지음을 봐주러 어머니와 누나네 가족이 집에 방문했다. 매형은 먼저 가고, 어머니, 누나, 조카와 함께 피자를 먹었다.
잠깐 글을 쓰고 잠들었다.
2025. 11. 30. 일. 포근
일어나니 아내가 지음을 돌보고 있었다. 지음을 넘겨받고 아내를 재웠다. 지음은 분유를 잘 먹고 잠들었다. 지음이 잠든 사이 쪽글을 썼다. 아내가 깨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내가 지음을 보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썼다.
지음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내와 근처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지저분하지만 그래서 즐거운 곳이다.
오는 길에 크게 화를 내는 남자를 마주쳤다. 그는 전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주차 자리를 못 찾는다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두려워했다. 나는 나의 무력함을 생각했다.
저녁에 기절할 것 같아서 일찍 잠에 들었다.
새벽에 이런 생각을 했다. 죽음은 탄생만큼 고귀한 것이라 사람들은 때로 좌판에 잘못 내놓는다.





2025. 12. 1. 월. 맑고 추움
출근해 일했다. 새벽 내내 자지 않아 피곤했다. 22시 넘어 퇴근했다. 하루가 길었다.
집에 와서 잠든 지음을 봤다. 아내가 준 굴전을 먹고 씻었다. 화장실 변기를 닦고 갓또를 돌봤다. 아내는 크러쉬 소속사에 보낸 사연이 선정돼 인터뷰를 찍게 됐다고 자랑했다.
갑자기 삶이 걷잡을 수 없이 안정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5. 12. 9. 화. 감기로 추움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출근해 겨우 일했다. 퇴근하고 지음을 돌보다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지음을 재우고 집안일을 마저 하고 원고작업과 논문작업을 했다. 하이데거의 양심 개념을 이해했다. 오늘은 뿌듯하게 잘 수 있다.
2025. 12. 10. 수. 감기로 추움
출근해 일했다. 퇴근하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외출한 아내와 지음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2025. 12. 11. 목. 감기로 추움
누런 코와 가래로 숨이 막혀 일어났다. 일어나서 식염수로 코를 헹구니 진득한 것들이 떨어졌다. 지음에게 옮길까봐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출근해 일하다 오후에 병가를 쓰고 집에 왔다.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나가지도 못했다. 퇴근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깨고 나니 몸이 조금 가뿐해졌다. 칸트의 <인간학>을 읽고 오랜만에 글씨를 썼다. 灑掃應對盡性至命 여덟 글자를 세 번 연습했다.
2025. 12. 15. 월. 추움.
출근해 일했다. 저녁에 친구 찬영을 만나 소주를 마셨다. 재미난 근황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이름인 선우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아내와 가벼운 일로 실랑이를 했다.
2025. 12. 16. 화. 춥고 비.
어제는 정신나간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도 밤새 게임을 했다.
출근해 일했다. 졸음이 쏟아져서 점심을 먹지 않았다. 집에 와 논문과 원고 작업을 했다.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2025. 12. 31. 수. 청명한 한겨울
아내가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지음과 달콤하게 낮잠을 잤다. 아내가 돌아와 함께 식물원에 갔다. 지음이 처음으로 흙을 만졌다.
아내와 세밑을 축하했다. 새해에는 내 삶에 주도권을 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