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3. 화. 살을 엠
출근해 일했다. 새벽에 지음이 울어서 잠을 잘 못 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너무 추워서 어지러웠다.
헤겔 <정신현상학>을 읽었다. 행위자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이 헤겔이었다.
저녁시간을 허비했다.
내일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반드시 해야 한다.
2026. 1. 14. 수. 추움
출근해 일했다. 점심에 별로 친하지 않은 다른 팀 팀장과 산책했다. 내내 주식 이야기를 했다.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퇴근해 지음을 돌봤다. 시간을 허비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지작거리다 끝내지 못했다. 자기 전 자유시간을 보냈다.
2026. 1. 18. 일. 추움
자제력을 기르겠다는 새해다짐은 작심삼일로 끝났다. 어제 새벽 네 시까지 게임에 빠져들었다. 아내가 꾸짖어서 바로 자러 들어갔다. 나도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망가졌다.
아내와 점심에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지음 낮잠 시간에 지음 방에 네 가족 모두가 몰려가 시간을 보냈다. 성용이 선물해준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었다. 부모님이 지음을 보러 와주셨다. 아내와 운동했다. 앞으로 생활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정치공학 교과서 찾기
2026. 1. 20. 화. 강추위
내 안의 악마와 씨우고 있다.
출근해 일했다. 어제는 강의 준비를, 오늘은 원고작업을 조금 했다.
돌아와 지음을 돌보다 잠들었다. 집을 돌보고 작업하려는데 지음이 울었다. 지음을 달래다 또 잠들었다. 아예 지음을 안방에 데려와 같이 자기로 했다.
2026. 1. 25. 일. 추움
이틀을 앓았다. 바이러스성 위염. 감기에 걸리면 목이 쓰리듯 나는 속이 쓰린 거라고 한다. 어제 병원에 가 수액을 맞고 겨우 나았다.
새벽에 지음이 깨 아내가 고생했다. 아침에 내가 교대해 고생했다.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가려던 찰나 아내가 베이비카페에 가자고 했다. 부모와 아이 모두 즐거운 곳이었다. 집에 돌아와 만화를 보다가 어머니가 오셔서 지음을 봐주셨다. 아내와 단둘이 만화방에 다녀왔다. 저녁에는 성용과 효신 두 친구가 놀러 왔다. 지음의 200일을 축하해주었다. 즐겁게 놀다 친구들을 돌려 보내고 아내와 집을 정리했다. 갓또를 놀아주고 발톱을 깎았다. 내 손발톱도 깎았다.
2026. 2. 8. 일. 추움
아들을 곁에 앉혀 놓고 입춘대길을 썼다.

2026. 2. 9. 월. 매우 추움
출근해 일했다. 퇴근하고 아내와 중국집 음식을 포장해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2026. 2. 10. 화. 봄비
출근해 일했다.
2026. 2. 19. 목. 맑고 추움
출근해 일했다. 네 가지 중요한 일을 해냈다. 하고 싶었던 작업 시간은 좀체 나지 않았다.
어제까지 5일간의 설 연휴를 보냈다. 토, 일, 월, 화, 수. 언제부터인지 작은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시작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해야 할 일에 온 힘을 다해 매진한다. 급한 일부터 빨리 끝낸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이 간단한 일을 33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었다. 수능 시험을 준비하던 고3시절? 그때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기를 돌보고 집안을 보살피는 일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아내와 크게 다투었다. 다투었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분노를 쏟아냈다. 내가 화난 이유는 자신의 삶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온실 속 화초는 비바람과 냉기로부터 막아주는 비닐이나 유리 따위에게 무한히 감사해야 한다. 화초에 불과하다면 거기까지 멈추어도 좋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자기도 언젠가는 비바람과 냉기에 노출되리라는 운명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품어주어야 할 또 다른 화초를 낳았다면, 이제 화초가 아니라 비닐과 유리 따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온 몸으로 맞서야 한다. 아무리 내가 눈 감고 귀 닫고 흙 속에 머리를 파묻는다고 해도 운명은 주저하지 않고 나를 덮친다.
아내는 운 좋게도 온실에서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아내는 자존감이 무참히 짓밟혀본 경험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겪었어야 아픔이 덜했을 일이 아직도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군대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개똥밭에 구르는 삶을 살아 왔다. 나는 엉터리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온몸을 비틀어 구르는 재주라도 보여야 사람들에게 겨우 밟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미물이다. 아내는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 줄을 아직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온실에 머무르라고 조언했으나, 아내는 오히려 이 마음을 ‘구시대적’이라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엉터리 가부장 사상에 심취된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요 며칠 바쁘게 육아와 집안일에 매진하며 나는 조용히 명상했다. 연휴의 종말과 함께 명상을 끝내며 내린 결론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온실에 머무르기를 거부했고, 그렇다면 아내가 세상에 나설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무시와 냉대, 외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아이를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게 지갑을 열어줄 사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나는 물어야 했다.
아내는 어떤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부정만 할 뿐,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걱정스러웠다.
2026. 2월 말과 3월 대부분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내를 지켜주고 싶었다. 아내의 순수한 모습이 좋아서 결혼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아내를 지키고 싶어서 내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무엇인가? 왜 아내에게 그런 궂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걸까?
아무것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기간이었다. 헤겔의 <법철학>을 읽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그마한 행운목을 들였다가 ‘액운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깥 화단에 버렸다. 갓또가 잎을 뜯어먹은 탓이다. 고양이에게 좋지 않은 식물이라지만 이름도 좋고 갓또도 흥미를 보이지 않겠거니(우리 집에는 오랫동안 선인장이 살고 있다) 싶어서 들여왔다.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것 같아 식물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친구 우택이 놀러왔다. 매년 한 번씩은 보는 오랜 친구다. 우택도 힘든 삶을 이겨내고 있었다.
제혁 형이 놀러왔다. 형과 늦게까지 놀다가 거실에서 함께 잤다. 오랜만이었다. 형이 시험을 끝내서 좋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보았으면 싶었다.
2026. 3. 23. 월. 서늘한 봄날
출근해 일했다.
지음이 “아빠”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기의 없는 기표랄까? 그냥 입으로 [압바]라는 소리를 내었을 뿐, 나를 보고 “아빠”라고 하지는 않았다. 장인어른이 집에 놀러와 그 장면을 함께 보았다. 아내와 나, 장인어른은 지음의 호명을 듣고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지음은 깜짝 놀라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 순간이 지음의 뇌리에 깊게 남았던 것 같다. 지음은 잠들기 직전까지, 눈을 감으면서도, 미소를 띠며 박수를 쳤다.
내가 화를 내서 아내는 마음에 깊게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아내에게 사과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말했다. 나는 티없는 네 모습이 좋았다고,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나였다고, 모두가 독기를 품고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기척도 없이 태도를 바꾸고 화를 낸 건 나였다고. 모두 털어놓고 사과했다. 오히려 아내를 감싸는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내 자신이 못나 보여서 그걸 감추려고 화를 낸 것 같다고, 내 잘못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고, 앞으로 조금씩 바꿔보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2026. 3. 26. 목. 봄날.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이 도착했다. 이제야 흐름이 보이는 듯하다.
2026. 4월부터 5월까지. 좋은 봄날.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뭐랄까. 서로 결혼생활에 대해 반성해보는 계기를 갖게 됐다. 5월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까지 휴가를 붙여 써서 긴 연휴를 보냈다. 아내와 크게 다퉜다. 아무래도 내 정신이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깨닫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전 기싸움을 하고 있다던 변호사가 나를 크게 모욕했다. 나는 공개적인 모욕에 역린이 난 이무기다. 공개적인 모욕을 처음 겪은 건 군대에서였다. 나는 비교적 착실한 사회인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소속된 집단에서 늘 칭찬과 존중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학군단 시절에도 성적이 좋아 비교적 군생활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정훈장교에 선발됐다.
비극은 전방 포병부대에 배치된 것부터 시작됐다. 350명으로 구성된 대대에 300명 포병, 50명 통신이었다. 그중에 딱 둘, 나랑 군의관만 병과가 달랐다. 군의관은 의사니 논외고, 나는 하룻강아지 소위로 지휘통제실 생활을 시작했다. 갓 전입 온 이병부터 작전과장 소령까지 열 명 남짓 인원들이 24시간 교대하며, 여차하면 미리 조준된 지역에 포탄을 박아넣도록 구성된 고도로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거기서 소령 작전과장은 나를 심리적으로 갈갈이 찢어 놓았다. 내가 뭘 해도 화내고 욕했다. 거기서 오는 무력감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감각이었다. 의미 없는 서류를 반복해서 기안시키고 초안을 가져가면 벅벅 찢어 얼굴과 가슴팍에 던졌다. 이병에게는 마음의 편지로 긁힐까 설설거리면서, 나를 그렇게 대했다. 저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부터 나는 무너졌다.
퇴근하면 숙소에 찾아와 술자리를 빙자한 얼차려를 시켰다. 대위 선배들과 하사 중사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소령이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지목하면 웃긴 농담을 해야 한다. 재미없으면 가리킨 방망이가 그대로 정수리에 꽂힌다. 작전과장 몰래 담배피러 나와서 선배들에게 선포했다. 이렇게는 못 산다고, 나는 전역할 거니까 저 인간은 찌르고 갈 거라고, 당신들에게 큰 거 바라지 않으니, 내가 맞은 걸 봤다는 말 한 마디만 해달라고. 선배들은 눈사람 같은 혹을 비비면서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런데 감찰조사가 시작되자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기는 본 적이 없다고, 저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결국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부대에서 쫓겨났다. 옮긴 부대에서 나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끝없이 입증해야 했다. 전역 직전에 몇몇 짬중사가 해준 ‘정훈장교님 들리는 소문이랑은 다르게 꽤 괜찮은 사람이네요’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겨우 위안을 삼았다.
이런 개같은 상황을 전역하고 또 당했다. 대학 시절 참여했던 로켓 동아리가 투자를 받아 회사가 되었는데, 그때 형 형 거리던 인간이 대표 직함 달았다고 꼴값을 떤 것이다. 매일같이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내게 소리를 지르고 모욕을 했다. 그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나는 함께 로켓 만드는 동료라며 싸고 돌았다. 어느날 대표가 삼성전자에서 부장 진급 못해 떨어져 나온 어떤 이상한 늙은이 하나 채용하더니, 그 사람 이간질에 좋은 동료 몇을 잃었다. 자기 라인(?)으로 들어오라길래 그럴 생각 없다 하니 그때부터 내게도 이간질이 시작됐다. 대표의 개지랄은 전보다 더 심해졌고, 공개적인 모욕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로켓이고 뭐고 알아서들 하시라, 나는 공부하러 가겠다.
철학 공부하던 시간은 매우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천국 같았다. 아홉시에 출근해서 책을 읽고 열시에 도서관이 닫으면 퇴근했다. 아무도 나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지 않았다. 내가 글을 잘못 읽거나 잘못 쓰면, 모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논증으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기꺼이 조언에 따랐다. 그 전공을 살려 국회로, 지방의회로 흘러흘러 왔다. 한 3-4년 정도? 아무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 그 이상한 변호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의회에서 내가 조례안을 만들면 변호사는 검토한다. 변호사가 안 된다고 막으면 조례는 빠그러진다. 조례안을 반대하는 집행부 공무원들은 그 다이나믹을 간파하고 변호사에게 접근한다. 저 조례 만들면 안 되니까 막아달라고. 조례를 막으려는 이유는 다소 복합적인데, 핵심은 하나다. 불확실성이 싫은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지방자치법 덕택에 주민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가 유명무실해진 점은 두말할 가치도 없거니와, …
2026. 8. 1. 토. 숨막히는 더위
아침에 시티즈 스카이라인 지도를 만들었다. 뿌듯하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에릭 선생님의 귀화 추천서를 써야 한다. 하근 선배의 탄원서를 써야 한다. 내훈 선생님께 보여드릴 글을 써야 한다.
2026. 8. 28. 금. 흐림
청와대 다녀왔다.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 가문의 영광이다.
<청년의 내일, 국민주권정부가 함께 열겠습니다>
청년들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 어려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청년의 삶과 미래를 국가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야 대한민국의 미래도 열릴 수 있습니다.
청년정책이 공급자의… pic.twitter.com/ApTh7LhfTU— 이재명 (@Jaemyung_Lee) August 28, 202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49011


https://imnews.imbc.com/replay/2026/nwdesk/article/6848148_37004.html

https://www.nurs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6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