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과 충동의 통제

오늘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투고한 논문이 게재불가 판정을 받았다… 속상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모자란 점이 많은 글이었다.

수정게재 의견을 주신 한 분은 마치 PT를 해주시듯이 조목조목 개선방안을 제안해주셨다. 신선한 관점이라고, 꼭 수정해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감사하다. 주신 수정의견 잘 반영해서 더 멋진 글로 다듬어야지. 데뷔곡만 부르고 앨범을 내지 못한 만년 신인 가수처럼 나이만 먹는구나.

하지만 아직 젊고 건강하고 글 잘 쓰죠? 하핫… 할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위로를 받았다는 점도 함께 적어두었다.

맞아. 논문은 게재불가가 기본이고 게재승인이 기적이지. 수정후게재라도 얼마나 다행이겠어.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중요한 건 글이 아니라 삶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 잘 쓰는 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잠정적인 서론의 기능은, 하나의 중심선, 즉 의식적으로 차례를 재구성하기 전에는 바뀌지 않을 중심선에 따라 여러분들의 생각들을 고정해 준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은 이탈이나 충동을 통제하게 된다. (141쪽)

“이탈이나 충동을 통제하게 된다”… 나는 이 이탈과 충동을 사랑하며 살아왔다. 어떤 계획에 묶이는 것을 속박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사실은 실패가 두려워서 계획도 모험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덕분에 나는 잃은 것도 이룬 것도 없게 됐다. 글도 마찬가지. 어떤 글을 쓰면 계획 없이 내가 보고 들은 것과 내가 한 생각을 늘어놓는 편이다. 마치 이런 식이다.

“여러분, 이거 보세요! 저 정말 재밌는 걸 봤어요. 같이 봐요!”

논문은 그런 글이 아닌데, 그렇게 써왔다. 내게 “학술논문 투고의 디폴트는 게재불가”라고 위로해준 동료는, 내가 초고를 보여줄 때마다 누누이 말했다. “선생님은 장르적 글쓰기에 실패하셨어요.” 나는 이런 스타일이 내 독창성이라 믿었지만 오만이었다. 스타일의 변주는 정석을 자유자재로 실현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이번 게재불가 판정은 내게 그런 진리를 되새기게 해준 계기가 됐다.

이탈과 충동의 통제. 이것이 앞으로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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