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을 잃었음을 자랑스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그들은 ‘내가 이렇게 똑똑해서 너희와는 시각이 달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비극적인 사건을 보고도 우스개랍시고 보험료를 계산한다든지, 삶의 막다른 길에서 곡기를 끊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앞에서 게걸스럽게 배달음식을 처먹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비극을 한낱 농담거리로 삼는다. 그들의 유머에는 금기가 없다. 그들은 자기 입으로 내뱉는 헛소리를…
삶
피가 끓는다는 느낌
오늘 저녁 여섯 시에 거리에서 연설을 했다.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피가 끓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이런 느낌은 정훈장교 시절 300명을 상대로 교육할 때에도 느껴본 적 없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소수의 사람만 만나 공적인 말하기 능력을 잃은 줄 알았다. 지난 1년 동안 공부에 전념하면서는 단지 스승님이나 선현과 일대일로만 대화했다. 나는 말할 수…
작업정신
나는 지난 1년 동안 학문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정말 밥먹고 책만 봤다. 읽고, 쓰고, 때로는 밥을 거르거나 잠도 자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음미하느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문과 인격의 도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다 보니 언제 어떤 성취를 이루어야겠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다. 학위논문을 언젠가 쓰게 될 것이라는 막연함만…
좋은 유세문 쓰기
보좌관님이 꼬마 비서에게 유세문을 쓰라는 미션을 내렸다. 논문만 써 버릇하다보니 영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보좌관님, 좋은 유세문이란 무엇입니까?" "좋은 유세문이라... 좋은 유세문이 뭐냐?" 보좌관님은 수다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꽤 좋은 노하우라 생각해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여기 남기는 글은 그가 말한 그대로라기보다, 내가 소화한 바이다. 유세(遊說)는 말하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보좌관으로 태어나기
입법보조원으로 국회에 출근한 첫 날이다. 입법보조원은 말하자면 보좌관이라는 최종 테크를 타기 위한 기초 직업이다. 테란으로 치면 마린, 메이플로 치면 초보자다. 건물에 들어서는 법부터, 점심에 밥 먹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아주 인상적인 건, 매순간 생각할 것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감시와 통제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 공무원의 주기적 방문은…
거기에 강아지
가장 좋아하는 방석에 강아지가 엎드렸다 아마도 천 번은 넘게 돌았을 산책길 가로수가 심긴 흙 냄새 맡고 오줌 갈긴 전봇대 냄새 맡고 자기도 똑같이 갈기고 아직 이해할 순 없지만 횡단보도 앞에 선 주인 따라 때때로 멈추었다 건너가고 익숙한 냄새 집에 돌아오면 발 닦고 물 마시고 사료 한 그릇 먹으면 볕이 드는 창가에서 졸음에 겨운 눈꺼풀 거실…
바람소리
바람 앞에서 나는 떠들고 있었다 혼자인 줄도 모르고 소란스러운 게 바람 때문인지 소아시아의 먼 강이 흘러가는 때문인지 아니면 흑백논리에 빠진 올리브나무 때문인지 생각하다가 잠시 바람이 흰색일 수도 있겠다 영사기의 빛을 받아내듯이 바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멸하고 흐려지고 부예져서 이제는 어두운 객석에서 멀뚱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나를 되비추는 거울처럼 하얄 수도 있겠구나 나는 바람이 너무 시끄러워서 소주 생각이…
사람들은 어떤 글을 좋아할까?
요새 이런 저런 실험하며 살고 있다. 일단 목표는 링크드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것. 2주 동안 두 편의 글을 썼는데, 하나는 <꼰대란 무엇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 발행한 <자곤의 함정>이었다. 두 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서로 상반된다. 1) 내용의 수위<꼰대>에서는 도전적인 내용을 썼다. 누군가는 동의할 것이고, 어떤 이는 반대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요새 민감한 세대 문제를 짚었다.…
Academia 점령 중
Academia.edu라는 사이트가 있다. 전세계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결과물을 올려 공유하는 공간이다. 논문 쓰고 썩혀두기 아까워 영문초록을 올려봤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먼저는 아렌트의 사상을 목적론적으로 해석하면 고정관념에 빠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언어철학을 하시는 교수님이신데 생각보다 아렌트에 대한 이해가 높으셔서 놀라웠다. 그런데 바로 그 밑에 법철학을 하시는 교수님 한 분이 반박하셨다. 아렌트의 사상이 법에 얼마나…
2022. 1. 2. 요약생활 88
내 생활을 돌아보는 일을 지난 추석에 하고 그만두고 있었다. 이제 해도 바뀌고, 논문도 통과하고, 졸업만 앞두고 있으니 쓸 때도 됐다. 오늘은 지원과 여기 저기 쏘다녔다. 그런데 어디를 다녔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적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설거지. 설거지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해야 한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