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프로필 전성시대 4

모든 일은 어떤 목적을 갖는다. 그 목적은 일이 수행될 때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일에 착수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바라며 시작한다. 일을 끝내고 난 이후에는, 만들어진 결과가 그 전의 바람과 일치한다고 말함으로써, 그 일이 최초에 그러한 목적 아래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때 과거의 바람은 의도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제서야 우리는 그것이 그…

바디 프로필 전성시대 3

몸에 익은 일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숙달과 실수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절제와 자제의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숙달은 절제와 유사하다. 절제하는 자(ὁ σώφρων)와 자제하는 자(ὁ ἐγκρατής)의 차이는 욕망(ἐπιθυμία)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마음 속에 불타는 것(θύειν)이다. 동요하는 것이다.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를 다시 나무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실수하는 것이다. 실수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숙한 자는 의식적으로…

바디 프로필 전성시대 2

결정은 깨어지지만, 생명은 죽는다. 결정은 얼어 있지만, 생명은 동요한다. 결정은 순응하지만, 생명은 저항한다. 생명은 끊임없이 노동하면서 주변의 질서를 잡아먹는다. 끝없이 끊임없이 무질서로 해체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노동하는 생명은 질서를 부여잡는다. 노동의 시작은 정신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최초의 경계에서 정신은 싹튼다. 정신이 깃든 신체는 먹을 수 있는 것을 삼킨다. 이미…

바디 프로필 전성시대 1

작업은 최종생산물을 남기고 종료되지만 노동은 삶 그 자체를 낳으며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2020년대는 그야말로 바디 프로필 전성시대라 부를 만하다.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트렌드와 구글트렌즈 검색어 비교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2023년 3월 현재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관심은 일정하다고 볼 수 있다. '바디 프로필'을 검색한 사례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2020년을 기점으로 점차 증가하더니 2021년부터 2022년 사이에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더 많은…

직업 안정성 3

직업 안정성은 법적 안정성과 긴밀히 연결된다. 만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삶이 직업의 안정성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법적 안정성을 살펴봐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직업 안정성은 내 의지에 따라 계속해서 직장에 소속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무도 직장에서 당신을 자르지 않는다. 그러나 월급도 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직장은 안정적인 곳인가? 아마…

직업 안정성 2

대표적인 철밥통에는 선생님도 있다. 독특하게도 교육공무원에 대해서는 '교권'이라는 특수한 권리 또는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된다. 권고사직도 금지되어 있다. 공무원보다 정년이 2년 더 늦다. 교육공무원법 제43조(교권의 존중과 신분보장) ① 교권(敎權)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② 교육공무원은 형의 선고나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이노스페이스의 대한민국 첫 민간 우주발사체 성공을 축하하며

돌이켜보면 우주와 나는 연관이 꽤 깊다. 나는 로켓을 만드는 회사에서 잠깐 일했다. 내가 거기서 느낀 감정은 '경이'였다. 날마다 놀랐다. 처음에는 그 복잡함에 놀랐지만, 나중에는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로켓 공학은 현대 과학기술의 결정체다. 신이 설계한 자연법칙의 아주 좁은 빈틈을, 로켓 기술자들은 파고든다. 운 좋게도 나는 회사의 맹아시절부터 합류해 로켓 기술자들 틈에 낀 유일한 '문과생'의 지위를 오랫동안…

직업 안정성 1

2022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는 10년 전에 비해 직업을 고려할 때 안정성을 더 선호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안정성이란 "지속적인 고용 보장"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고용 보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원치 않게 잘리는 경우'가 없거나 적은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물론 깊게 들어가자면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원치 않은 해고만 고용 불안정인가?…

큰 수의 안정성

어떤 것이든, 많은 수가 쌓이면 비슷해진다. 투명한 유리 잔에 담긴 맑은 물을 떠올려보자. 거기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잉크 방울은 물 속에서 확산하고, 맑은 물은 검게 변할 것이다. 검은 물은 특정한 부분이 더 검거나 덜 검지 않고, 어느 부분이나 비슷하게 검을 것이다. 잉크 방울을 구성하던 수많은 분자들이 고르게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잉크 분자들은 마치…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נַֽעֲשֶׂ֥ה אָדָ֛ם“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에 적힌 신의 말입니다. 세상을 창조하던 신이 마침내 인간을 만드는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신은 내내 단수(내가)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유독 복수(우리가)로 등장해 오래도록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신학도 전혀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 이렇게 추측해봅니다. 신도 육아는 혼자 하기 어려웠나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 그러니까 영양, 보호, 성장, 교육 등등은 홀로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