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프로필 전성시대 4

모든 일은 어떤 목적을 갖는다. 그 목적은 일이 수행될 때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일에 착수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바라며 시작한다. 일을 끝내고 난 이후에는, 만들어진 결과가 그 전의 바람과 일치한다고 말함으로써, 그 일이 최초에 그러한 목적 아래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때 과거의 바람은 의도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제서야 우리는 그것이 그 일의 목적이라 말한다. 바람(βούλησις)은 일이 완료되기 전에 미래로 던짐(βάλλειν)으로써, 의도(intentus)는 일이 완료되고 난 뒤에 과거로 뻗음(intendere)으로써, 공통적으로 말(λόγος, legere)을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가진 바람을 말할 수 없고, 지금 저기 동료 인간은 여기 내가 가진 바람을 말할 수 없다. 말(λόγος)은 선택(legere)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연속체로 펼쳐진 자연(nature)에서 공명하는 몇몇 부분을 짚는 것이다. 선택된 말은 결코 그것의 본질(nature)을 짚을 수 없다. 차연(différance)이다. 모든 말의 의미는 그것 아닌 것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지금(nunc stans)’이라는 시간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존재, 즉 신과 만난다. 지금 여기(hic et nunc)의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 예컨대 과거의 나, 미래의 나, 현재의 타인은 신이 된다. 우리는 그중 누구도 입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고 침묵해야 하는가? 산 꼭대기에 돌이 멈추지 않는다고 돌 굴리기를 멈추어야 하는가?

왜? 바로 이 질문이 인간을 만든다.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과 내가 왜 그것을 말할 수 없는지 묻는 것. 끝없이 계속되는 질문일지라도 반복해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질문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로 스스로를 던지고 그나마 가능한 경로로 뻗어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겨울잠에 들지 않는 것. 외란에 맞서 끝없이 자기복제하는 것. 고유한 배열을 잃지 않는 것. 잃더라도 돌연 변해버린 차이를 나의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왜 운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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