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어들기

섣불리 어떤 공동체에 끼어들려 하지 말라. 혐오를 불러 쫓겨날 수 있다. 공동체는 집단 이상이다. 공동체는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기만 한 집단이 아니라, 언어와 관습으로 묶인 관계이다. 그들만이 아는 말이 있고, 그들만 하는 행동의 양식이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은 공동체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에 있더라도 쫓겨날 수 있다. 공동체 밖에 있던 사람은 공동체의…

현명함

때로는 지식을 말하기보다 말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내기보다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때가 있다. 현명함은 행위와 무위 사이에 있다. 양 극단을 모두 떠올릴 줄 알아야 중간을 선택할 수 있다. 중간만 가라는 건 하나만 아는 소리다. 덮어놓고 반대만 하는 것들은 양자택일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피가 끓는다는 느낌

오늘 저녁 여섯 시에 거리에서 연설을 했다.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피가 끓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이런 느낌은 정훈장교 시절 300명을 상대로 교육할 때에도 느껴본 적 없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소수의 사람만 만나 공적인 말하기 능력을 잃은 줄 알았다. 지난 1년 동안 공부에 전념하면서는 단지 스승님이나 선현과 일대일로만 대화했다. 나는 말할 수…

작업정신

나는 지난 1년 동안 학문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정말 밥먹고 책만 봤다. 읽고, 쓰고, 때로는 밥을 거르거나 잠도 자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음미하느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문과 인격의 도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다 보니 언제 어떤 성취를 이루어야겠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다. 학위논문을 언젠가 쓰게 될 것이라는 막연함만…

보좌관으로 태어나기

입법보조원으로 국회에 출근한 첫 날이다. 입법보조원은 말하자면 보좌관이라는 최종 테크를 타기 위한 기초 직업이다. 테란으로 치면 마린, 메이플로 치면 초보자다. 건물에 들어서는 법부터, 점심에 밥 먹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아주 인상적인 건, 매순간 생각할 것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감시와 통제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 공무원의 주기적 방문은…

사람들은 어떤 글을 좋아할까?

요새 이런 저런 실험하며 살고 있다. 일단 목표는 링크드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것. 2주 동안 두 편의 글을 썼는데, 하나는 <꼰대란 무엇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 발행한 <자곤의 함정>이었다. 두 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서로 상반된다. 1) 내용의 수위<꼰대>에서는 도전적인 내용을 썼다. 누군가는 동의할 것이고, 어떤 이는 반대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요새 민감한 세대 문제를 짚었다.…

2022. 1. 2. 요약생활 88

내 생활을 돌아보는 일을 지난 추석에 하고 그만두고 있었다. 이제 해도 바뀌고, 논문도 통과하고, 졸업만 앞두고 있으니 쓸 때도 됐다. 오늘은 지원과 여기 저기 쏘다녔다. 그런데 어디를 다녔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적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설거지. 설거지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해야 한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기를,…

용서와 사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쁜 ‘짓’을 했다고 곧바로 나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앞으로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을 믿어주겠다는 마음, 사람을 사랑해서 옛날 일을 눈감아주는 마음이 용서다. 용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용서 덕분이다. 우리 부모님께서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셨으면, 고집세고 오만한 이 머리…

인생 선배

인생 선배가 될 것 같았던 사람을 만났다. 나와 비슷하게 군 생활을 했고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를 먼저 연구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몸 담던 기관에 들어가도 될지 조언을 구했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통화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웬걸 너무나 무식한 사람이었다. 뻔히 반박될 수 있는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는 사람은 무식하다. 더군다나 그 말이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라면 더욱.…

2021. 8. 24. 요약생활 85

혼란을 겪는 중.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알고 싶은 것 사이에서,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학기 안에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인가? 한 학기 미룬다고 논문을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전혀.. 어제 백신을 맞았는데 어깨가 욱신거리는 것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 좀 많이 졸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