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 술집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아내는 시를 읽고 이렇게 쓰면 더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존경하는 친구에게 같은 시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실제 있던 이야기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존경하는 친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어떻게 아내를 두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냐고 그러고도 어떻게…
삶
나락
어쩌지 나 큰일났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겠어 아직은 아니고 언젠가 땅으로 떨어져 알몸이 드러나면 더럽고 징그러우며 고약하고 역겨운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그래서 더더욱 더럽고 징그러우며 고약하고 역겨운 내가 어느 맑고 높은 가을날 웅성이는 광장의 단두대 앞에서 이토록 깨끗한 인간이 순교하는 영광의 날이 찾아오면 칼날에 묻은 살점이며 내 목의 짓이겨진 단면이며 흘러나오는 피냄새를 맡고 사람들은 제각기 구역질을…
강성훈, 위선과 염치
2022년 3월 29일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에 '오늘, 키워드 인문학'이라는 기획으로 게재한 칼럼 하나를 소개한다. https://inmun360.culture.go.kr/content/545.do?mode=view&cid=2372611 위선과 염치 위선이 드러나는 양상은 다양할 수 있다. 위선은 못난 인간이 더 못난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위선의 이름으로 비난받는 행태가 비난받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위선 자체가 아니라 그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의 몰염치함…
[비평] 눈물의 기도는 노래가 아니다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허 연 빼다 박은 아이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거룩해지지 않기. 상대의 문장 속에서 죽지 않기.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혹 시간이 맞거든 연차를 내고 시골 성당에 가서 커다란 나무 밑에 앉는 거야. 촛불도 켜고 명란파스타를 먹고 헤어지는 거지.…
위선에 관한 사람들의 대화들
위선이 아니라 '위선 혐오'라는 현상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위선을 혐오하는 것은 선인가? 위선 그 자체가 선인지 악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혐오하는 것은 선한가, 악한가? 혐오라는 현상의 가치는 혐오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가? 대상과 관계 없이 혐오라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해 평가할 수는 없는가? 이에 대해 한 가지 해석 단초가 될 수 있는 대화를 발견해…
존재물음의 구조
1. "존재와 시간 서론 읽고 있는데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존재(Sein)를 물을 때, 혹은 그에 대해 궁금증을 품을 때(fragen), 우리는 존재를 묻는 것일까요, 존재자(Seiendes)를 묻는 것일까요? 여기서 물어지는 것(Gefragtes)은 분명 존재이지만, 어쨌든 물음이 걸리는 건(Befragtes) 반드시 존재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 존재자뿐이고, 심지어는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우리,…
귀로
아침 출근길 우는 매미 엄마 손 잡고 울면서 걸어가는 여자아이 보도블럭 위에 채소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반음씩 하강하는 시간 떨어져 백화한 매미를 환대하는 개미들 우는 아이 손 잡고 바라보며 걸어가는 엄마 소쿠리에 담긴 채소처럼 떠오르는 반음씩 하강하는 나의 유년
철학자가 사람을 죽였다
가능한 잘게 썰어야 한다 인간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철학의 이비총을 쌓으려면 그는 먼저 도구를 골라야 했다 윤리는 너무 둔했다 도덕은 쥘 손잡이가 없었다 언어가 좋겠다 아니야 그보다는 좀 더 좆같네 그때 수(數)가 보였다 그는 수를 낚아채고 숫돌에 갈았다 수에서는 불꽃이 튀고 마침내 '0=00' 따위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 철학자는 퍼렇게 날선 수를 들고 뛰어 나갔다…
버린다는 것
엄마는 나를 버렸다 엄마도 죽냐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아니라고 안 죽는다고 나를 안아줬었다 가루가 된 엄마 흰 단지에 엄마를 담고 한 아름도 안 되는 엄마를 양손으로 붙잡았을 때 나는 더위로 속이 끓었다 하필이면 여름날에 이 무더위에 푹푹 찌는데 손에 땀은 자꾸 나는데 45인승 버스 앞 자리 누나 앉고 나 앉고 삼촌 매형 친구들 다 합쳐…
이재명의 먹사니즘에 대한 비판
("'지금 정치는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바로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했습니다."라는 기사에 대해 올라온 "근데 먹사니즘이란 말 자체는 비논리적인게 모든 정치이념의 종착지는 이렇게해야 잘먹고잘산다임 ㅋㅋ" 이라는 메시지에 대해) 흠… 그런가요…? 정치는 이념과 결합할 수 있나요? 이념을 완성하면 정치는 끝나도 좋은가요? 그동안 이재명을 별로 나쁘게 보진 않았는데, ‘먹사니즘’을 들고 나오면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