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6.-11. 24. 요약생활 249-264

2025. 10. 6. 월. 장마 같은 비

추석 당일이다. 새벽부터 처갓집 갈 준비를 했다. 처갓집 차례를 지냈다. 아내가 준비한 지음의 옷에 가족들이 모두 귀여워했다. 제사 음식이 맛있었다. 작은어머님은 늘 고생하신다. 지음이 외할아버지를 좋아했다. 외증조할머니와 교감하며 옹알이를 했다. 외작은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었다. 오래 있고 싶었으나 할머님께서 일찍 돌아가자 하셔서 집에 왔다.

지음을 돌보고 피곤해 한숨 잤다. 작업을 하다가 지음을 데리고 우중산책을 했다. 돌아와 홈캠을 고쳤다. 작업을 마저 하고 지인들에게 추석인사를 돌렸다. 아내와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잤다.

2025. 10. 7. 화. 이슬비

본가에 다녀왔다. 부모님과 누나네 가족, 이모네 가족까지 도합 11명이 모여 소란스러웠다. 모두들 지음을 귀여워했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화투를 치며 놀았다. 조카 의준과 친해졌다.

집에 돌아와 작업했다.

2025. 10. 8. 수. 이상적인 가을날씨

지음을 돌보고 논문작업했다. 별도 프로젝트 구상을 했다. 사르트르 <구토>를 모두 읽었다.

아내와 산책하다가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기분을 형용하기 어려웠다.

저녁 작업시간을 허비했다.

2025. 10. 9.-10. 목-금. 기억나지 않음

지음을 돌보고 늦게까지 작업하는 나날이었다. 멋진 선배 한 분이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오랜만에 몰입해서 작업했다.

2025. 10. 11. 토. 오후부터 비

장인어른 생신 기념 식사를 함께 했다. 새벽까지 작업하다 가서 피곤했다. 식사 후 카페에서 대화를 잘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주차한 위치와 카페가 다소 멀어 비를 맞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데, 나는 혼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는 의견, 아내와 장인어른은 비가 지나간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별로 좋은 인간이 아니다. 인적 드문 풀숲 근처라 숲모기가 날리는 걸 보고 지음이 물릴까 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자리를 피하자고 다소 짜증스럽게 말했다. 장인어른과 우리 가족은 비를 맞으며 차로 갔다. 다행히 장인어른께서는 즐거운 추억으로 여겨주셨다. 아내는 잘 참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가 고쳐달라고 했으니 고쳐야 한다.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작업했다.

2025. 10. 12. 일. 이상적인 가을날씨

성용의 일본 여행으로 아침 운동 장소를 헬스장에서 공원으로 옮겼다. 아내와 중앙공원 한 바퀴를 뛰었다. 대화 가능한 가벼운 속도로 한 바퀴에 15분이 걸린다. 아내와 정리운동으로 공원을 걷는데 턱걸이가 있기에 7개 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칭찬해주셔서 우쭐했다. 오랜만에 유쾌한 스몰토크였다. 아내와 기우회에 들러 오목 한 판을 두고 아내에게 바둑 규칙을 설명해줬다. 돌아오는 길에 베트남커피와 반미를 샀다. 지음을 돌보러 와주신 어머니와 수다를 떨며 먹었다. 지음은 어머니 품에서 곤히 잤다.

어머니 배웅하는 길에 이사갈 집을 들러 이사 계획을 짰다. 어머니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작업을 시작했다. 4일 걸린 작업을 마치고 선배에게 송고했다. 쓰던 논문 초고도 한 챕터를 완성해 친구들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2025. 10. 15. 수. 서늘함

출근해 일했다. 일찍 잤다.

2025. 10. 18. 토. 이상적인 가을 날씨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만 했다. 자기통제를 잘 지켜 뿌듯했다.

2025. 10. 20. 월. 추움

출근해 일하고 퇴근해서도 일했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새벽에 일어난 아내가 걱정되는 마음을 화로 표현했다.

2025. 10. 21. 화. 추움

출근해 일했다. 오래 붙잡던 일을 끝내 모처럼 뿌듯하게 일했다. 퇴근하고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화 대 삼성 경기를 봤다. 문동주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전 논문 작업을 했다.

2025. 10. 30. 목.

개종한 야구팬의 고백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부터였다. 나는 학원에 늦게까지 남아 쎈수학을 풀고 있었다. 엠피쓰리에 담은 음악도 지겨워 라디오로 돌리던 때, 야구 중계라는 걸 처음 접했다. 그전까지 내게 야구란 재미난 만화영화 편성을 방해하는 불청객 정도였다. 그때 누구랑 경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기아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하고 있었다. 응원하는 팀도 없이 야구 중계를 듣다가, 나지완이 끝내기 역전 쓰리런을 쳤다. 딱- 하는 소리와 잠깐의 정적, 그리고 열광적인 함성소리에 나는 전율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구나, 느끼면서 함성을 삼켰다. 그때부터 나는, 누가 내게 어느 팀을 응원하냐고 물어보면 기아 타이거즈라 답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야구를 열심히 본 건 아니었다. 어영부영 고교와 대학 시절을 보내다 잠깐 광주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방문할 일이 있었다. 저녁에 허름한 모텔에서 쉬다가, 야구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경기장에 7회 말에 도착해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모두가 붉은 옷을 입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응원가는 너무나 다양했고 모두가 외우고 있었다. 나도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했지만 그들과는 다른 공간에 있었다. 그렇게 양복차림으로 객석 사이 계단에서 경기를 보다가, 서울에 돌아가서 유니폼을 샀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여자친구가 엘지 트윈스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 야구장을 가보자, 라는 말로 내 첫 직관 다운 직관이 시작됐다. 잠실에서 열리는 엘지 트윈스 대 기아 타이거스 경기를 예매했다. 관중석은 홈팀 1루석. 여자친구는 엘지 트윈스의, 나는 기아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꽤나 흥미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쇄도하는 연락을 보고 알게 됐다. 관중석을 응시하던 카메라 감독이, 수수많은 트윈스 팬들 속에서 여자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적진 한가운데 앉은 타이거스 팬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기아 타이거스는 역전 적시타를 맞고 나는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머리를 감쌌다. 그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핸드폰은 그야말로 불이 났다.

불이 난 건 핸드폰만이 아니었다. 여자친구의 아버님은 눈에 불을 켜시고 우리 집안에 기아 타이거스 팬이 웬 말이냐는 반응이셨다. 훗날 장인어른이 될 이 분은 엘지 트윈스의 원년 골수팬이셔서 엠비씨 청룡 때부터 동대문운동장을 제집 드나들 듯 하신 분이었다. 나는 사랑을 위해 개종을 택했다. 나는 결혼하기 직전까지 예비 장인어른의 환심을 사고자, 엘지 트윈스의 팬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도 기아 타이거스의 성적은 매일 확인했다. 군 복무 중에는 야간당직근무를 하다 기아 타이거스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전원 티비연등을 선포하는 한편 지휘통제실 아이들에게 피엑스를 쏘기도 했다.

전역하고 살 길을 찾느라 야구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엘지 트윈스 선수단은 볼 때마다 생경했고 기아 타이거스 경기도 어느샌가 심드렁하게 보였다. 그렇게 흘러 흘러 세월을 보내다 이번 시즌부터 부쩍 엘지 트윈스 응원에 열심을 냈다. 시즌 첫 경기를 한물 간 파이어볼러 임찬규가 완봉승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쎈수학을 앞에 두던 마음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웬걸, 거의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던 엘지 트윈스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오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9회 초 무사 1루, 4대 1로 밀리던 엘지 트윈스에서 박동원이 타석에 올랐다. 나는 박동원의 야구를 좋아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모든 공에 풀스윙을 하는 스타일이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마운드에는 한화의 슈퍼루키 마무리 김서현. 시즌 막바지부터 포스트시즌 내내 마음고생에 시달리다 직전 경기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선수였다. 흐름의 게임인 야구에서는 분위기가 전환되는 시기, 승부처라 불리는 순간이 있다. 그건 한 경기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2승을 올리다 직전 경기에서 패한 엘지 트윈스는 이번 경기마저 내주면 분위기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그래서였을까, 풀스윙의 사나이 박동원은 오늘따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방망이를 잡았다. 그리고 툭 갖다 댄 공이 그대로 중견수를 넘어 담장 밖에 떨어졌다.

찰나의 침묵과 뒤이은 환호, 그리고 아들이 깰까봐 소리없이 아우성치는 내 모습이, 15년 전 쎈수학을 앞에 두고 함성을 삼키던 중학생을 불러세웠다. 승리의 여신은 완전히 엘지 트윈스에게 돌아섰고, 트윈스의 타자들은 연달아 안타를 쳤다. 아, 이래서 야구를 보는구나. 뭐랄까, 오늘 경기는 어떤 경건한 의식과도 같았다. 개종한 신자가 완전한 신자로 거듭나기까지는 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2025. 11. 5. 수.

출근해 일했다. 아내와 절망적으로 싸웠다.

2025. 11. 6. 목.

출근하지 않았다.

2025. 11. 10. 월. 따뜻한 겨울

지음의 구강기가 시작됐다.

2025. 11. 18. 화. 추움

출근해 일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혼인서약서 족자를 주문했다. 아내가 낭만적이라며 좋아했다. 아내를 대신해 집안을 돌봤다.

2025. 11. 23. 수. 추움

출근해 일했다.

지음이 처음으로 밥알 한 톨을 삼켰다. 지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새벽까지 일했다.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아내와 주말마다 백일 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재래시장을 간다. 사람 사는 느낌이 나서.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사는 부천에 절망적인 일이 일어났다. 재래시장*에 트럭이 돌진해 십수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친 것이다. 시장에서 죽음이란 참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것인데. 황망하다.
트럭을 몬 사람은 생선가게를 하던 60대 아저씨였다. 언론에 발표된 원인은 페달 오조작.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아하, 사람을 죽였으니 나쁜 놈. 게다가 60대면 노인인데. 틀니를 압수하듯이 면허를 빼앗아야지. 그렇게 사람들은 나쁜 것들을 박멸해 유토피아를 만들자고 할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형량을 부과해야 할까? 십수 명의 생명과 건강이 희생되었으니 사형도 모자랄 것인가?
밀린 회사 일을 집에서 하다 생각해본다. 정말 원인은 '60대 노인'의 '페달 오조작'에서 멈추는 것일까? 나는 그의 삶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인자(혹은 과실치사자)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직시하자는 것이다. 수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참사의 원인은 새벽노동에서 찾을 수도 있다.
부천에서 수산물을 떼오려면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수산물도매시장에 가야 한다. 좀 더 멀리 가면 인천 중구의 연안부두 어시장도 있다. 모두 새벽에 연다. 여기에서 새벽이란 미라클 모닝 같은 이른 아침이 아니다. 전국 어촌에서 공판장을 거쳐 실려온 물고기는 새벽 2시경 도매시장에 도착한다. 생선가게 주인이 좋은 수산물을 떼오려면 그때부터 경쟁해야 한다.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그는 피곤했을 것이다. 과로운전은 음주운전만큼이나 불법이니까. 우리에게는 피곤함을 혈중알코올농도만큼 숫자로 딱 떨어뜨리는 기계가 없을 뿐이다. 이번 참사를 일으킨 그에게는 비난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비난을 배설하고 말 것이다. 죽일 놈이네, 라고. 그렇다면 정말 그를 죽여야 할까?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죽일 놈의 대상을 새벽노동으로 바꾸면 어떤가? 새벽노동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맞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유난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새벽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집은 활어회 한 점에 누군가의 새벽조업이, 새벽배송이, 새벽도매가 녹아 있다. 지금까지 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있었다. 그러니 새벽노동을 악마화할수록 그가 사는 세계의 협소함만 보일 뿐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죽여서 세상이 나아지면 참 좋겠다. 그러나 죽여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욕심이다. '밤은 어두워, 그러니 잘 시간이야'라고까지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들 자고 있어, 그러니 돈을 더 줄게'라는 생각이 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모두가 자제력을 길러야 한다'는 콩으로 메주 쑤는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다들 이런 답 없는 이야기로 열심을 냈으면 좋겠다. 나는 고작 이 따위로 참사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 수밖에 없다. 슬프다.
* 나는 재래시장이라는 어감이 좋다. 예전부터 있어온 곳이니까. 누군가는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리며 불결하다 하겠지만, 불결함도 삶의 일부인 걸 어쩌나. 『분해의 철학』을 읽어보기를. 새벽노동도 그런 불결하지만 불가분의 것이다.
**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살인자를 향한 옹호로, 새벽노동으로 쌓아올린 자본에 대한 아첨으로 보일 수 있겠다. 어쩔 수 없지.

2025. 11. 24. 목. 마지막 가을비.

출근해 일했다.

처가와 식사했다.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

살아 있어야 해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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