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으로 태어나기

입법보조원으로 국회에 출근한 첫 날이다. 입법보조원은 말하자면 보좌관이라는 최종 테크를 타기 위한 기초 직업이다. 테란으로 치면 마린, 메이플로 치면 초보자다. 건물에 들어서는 법부터, 점심에 밥 먹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아주 인상적인 건, 매순간 생각할 것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감시와 통제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 공무원의 주기적 방문은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인가,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조치인가?

로스쿨이 공정한가, 사법고시가 공정한가? 아니면 둘 다? 법조인은 어떤 시스템으로 양성해야 하는가? 말을 타고 섬 전역을 돌아다니던 중세의 영국 판사처럼, 주민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것만이 법조인의 권위를 낳는가? 고대 로마의 집정관처럼,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법률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공약은 누가, 어떻게, 왜 만드는가? 우리는 선거를 치르면서 공약을 주의깊게 읽는가? 지지자 역시 공약을 알고 뽑는가, 단지 좋아서 뽑는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가, 중우정치의 굿판인가? 정치적 견해를 단지 취향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혐오의 언어가 정치에 등장해도 되는가? 그러나 포기하기에 그건 너무 강력하지 않은가?

공부에 전념하던 지난 일 년은, 날마다 책을 들여다봐도 생각할 거리가 부족했다. 시간은 많은데 재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자꾸 옛날 책만 파고들기 바빴다. 그런데 이제는 재료가 차고 넘치는데 시간이 없다.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으려 해도 시간, 힘이 없다는 핑계뿐이다. 일단 자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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