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는 10년 전에 비해 직업을 고려할 때 안정성을 더 선호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안정성이란 "지속적인 고용 보장"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고용 보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원치 않게 잘리는 경우'가 없거나 적은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물론 깊게 들어가자면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원치 않은 해고만 고용 불안정인가?…
[태그:] 철학
큰 수의 안정성
어떤 것이든, 많은 수가 쌓이면 비슷해진다. 투명한 유리 잔에 담긴 맑은 물을 떠올려보자. 거기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잉크 방울은 물 속에서 확산하고, 맑은 물은 검게 변할 것이다. 검은 물은 특정한 부분이 더 검거나 덜 검지 않고, 어느 부분이나 비슷하게 검을 것이다. 잉크 방울을 구성하던 수많은 분자들이 고르게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잉크 분자들은 마치…
[작문]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0. 들어가며 첫 문장은 이렇다. πᾶσα τέχνη καὶ πᾶσα μέθοδος, ὁμοίως δὲ πρᾶξίς τε καὶ προαίρεσις, ἀγαθοῦ τινὸς ἐφίεσθαι δοκεῖ. 모든 기예와 모든 방법, 행위나 선택 같은 것들은, 어떤 좋은 것에 향한 것으로 보인다. (1094a1) 그러므로 이 책의 목표는, [1] 좋은 것이 무엇인지, [2] 우리가 어떻게 좋은 것을 제작/탐구/행위/선택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제작/탐구/행위/선택은 인간의…
씨
사물과 생명의 대비가 아름다운 시다. 사물을 알기 위해서는 쪼개야 한다. 이건 내가 늘 말하듯이, 원자론적 세계관에 적합하다. 원자는 고대 그리스어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아톰(atom)이니까. 사물은 쪼개도 사물이다. 다른 사물로 변할지언정 사물이 사물이 아닌 것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질량과 에너지가 실은 하나라는 아인슈타인의 발견도 놀랍지 않다. 그 모두가 사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을 알기…
동기화와 여론
동기화(synchronization)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고정된 바닥에서 동기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바닥이 흔들려야 동기화가 빠르게 일어난다. 동기화의 과정은 이렇다. 한 진자가 고정되지 않은 바닥 위에서 진동한다. 바닥은 진자의 반대로 움직인다. 복수의 진자가 무작위로 진동한다. 바닥은 진자들의 운동량 총합에 따라 반대로 움직인다. 바닥의 움직임에 반대되는 진자는 운동량이 감소하지만 들어맞는 진자는 운동량이 유지된다. 진자들의 모멘트 총합과…
깊이와 에토스, 성형수술
에토스는 깊이다. 에토스는 행위의 축적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한 행위도 나의 에토스를 형성한다. 내 속마음과 몰래 한 짓은 아무도 볼 수 없지만, 에토스로 결국 드러나게 된다. 에토스는 친애를 가능케 한다. 친구 사이는 어쨌거나 타인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매개로만 가능하다. 필요에 따른 충족과 육체적 즐거움은 철저히 가시적인 것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악어와 악어새는 만들어진 이야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2권 68절에는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가 나온다. 악어 입속의 거머리를 악어새가 먹어주는 대가로 악어는 악어새를 해치지 않는다는 모종의 약속을 서술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사』 9권 6장에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악어새가 악어 입속의 거머리를 먹는다기보다 악어에게 양치질을 해준다는 식으로 서술된다. 2012년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출간한 정준호 씨는 이 점을 지적한다. 바로, 기생과 공생 관계를…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④ | 칼로 물 베기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읽기 표류하는 자연, 분할하는 정신 우리는 참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봄바람 휘바이든' 사건에서, 1853년 조선 부산에 표류한 '사우스 아메리카 호'와, 1653년 조선 제주에 표류한 헨드릭 하멜 이야기까지.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먼 사건이 서로 유사한 이유는 바로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듣기는 말하기보다 공정한가 말하기는 대표적인 선택 행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전과 같은 랑그가 있습니다. 말문을 열 때, 우리는 랑그에서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해 내뱉습니다. 물론 첫 머리만 고르고 나머지는 습관처럼 연상해내지만요. 말하기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선택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택이…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① | 우리가 바이든을 날리면 안 되는 이유"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말이 표류한다니, 무슨 소리야? 문제는, 대통령실의 '날리면'이라는 해명이 등장하기 전까지, '날리면'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든'이라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요. MBC뉴스가 가장 처음 그렇게 듣고 대중에 보도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