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이라고 하면 일단 타인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특성은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와 반대로 교양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의 태도가 대상의 보편적인 성질에 맞추어지지 않은 채 그의 개인적인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교양이 없는 사람은 단지 자기 멋대로 처신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염두에 두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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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가 유능하다는 착각
범죄는 상식으로 알아본다. 합법이어도 범죄같은 짓들이 있고, 불법이어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만한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차별은 합법이었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빈곤으로 절도에 내몰린 장 발장에게 많은 사람들이 동정하는 것과 대조된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 상식을 배운다.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과거의 여러 사례들을 기억해 현재의 사안을 평가하는 데 참고하는 적당한 기준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자곤의 함정
전문 용어를 자곤(jargon)이라 한다. 자곤은 일상 대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한 산업군이나 학계처럼 제한된 공동체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동체에서는 오히려 자곤이 일상적이다. 어떤 사람의 말만 보고도 그 사람에 대해 대강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데 자곤은 나름의 맥락을 지니고 있어서 일상적인 단어로는 대체할 수 없다. 흔히 사용하는 힘(force)라는 단어와 뉴튼이 사용하는 force는 결코 같을…
불멸, 영속, 지속
작업의 결과인 작품은 행위(action)의 결과인 행위(deed)보다 지속한다. 행위는 망각되기 쉽지만 작품은 사물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체가 설립되면, 정치체는 작품을 대체한다. 정치체는 영속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치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행위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행위자가 죽고난 뒤에도 행위는 남아 기억된다. 정치체는 작품을 대체하지만 작품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도식에서 보면 작품은 지속하고, 정치체는 영속한다. 그러나 정치체의 영속성은 작품의…
죄형법정주의
죄형법정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생각이 재미있다. 나는 죄형법정주의가 실천의 문제에서 인식의 문제로 확장된다고까지만 생각했는데, 아렌트는 도덕의 문제까지 확장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죄가 법으로만 규정된다면, 그 자체 죄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도덕은 조건 없는 절대적 법칙이므로 죄는 금기로만 규정되고, 도덕의 영역에서는 그 자체 악인 것을 찾을 수 없다. 죄형법정주의가 어쩌면 근본악에 대한 아렌트의 입장을 변화시킨 주요…
빛과 행위, 양자정치학 뻘소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힘은 전자기력이다. 규모로 따진다면야 중력이 가장 큰 힘이겠지만, 전자기력은 다양하고 조절하기 쉽다. 전자기력은 달리 말해 빛이다. 빛은 직진하면서 동시에 회절한다. 그래서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다. 전기력과 자기력은 파동의 형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곧장 나아간다. 서로가 매질이자 힘이 된다. 우리가 사는 거시세계는 전자기력이 크게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공간이다. 햇볕을 쬔다고 내가 선…
학계에 기여한다는 것
왜 공부를 할까? 사람은 세계 속에 산다. 본인만을 가꾸며 사는 방법도 있겠으나 세계를 가꾸는 데 힘을 보태며 사는 방법도 있다. 공부는 모르던 것을 알게 하고 알게 된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작업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망각의 구멍으로 끊임없이 쏟아져내리는 지식을 주워담기 위해 노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틈에서 나라는 인간을 알리기 위해 행위하는 삶을 사는…
Are(judging)
Arendt, Hannah, 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The University of Chicago, 1982.한나 아렌트, 『칸트 정치철학 강의』, 김선욱 역, 푸른숲, 2002. 김선욱,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푸른숲, 2002.
Are: 전체주의의 기원
Arendt, Hannah,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6.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이진우 · 박미애 역, 한길사, 2017. 김선욱,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푸른숲, 2002. (law) 제국주의자들은 무한한 운동과 같은 팽창을 신봉한다. 크로머는 이런 형태의 통치를 '전례없는 정부형태'라고 일컬었다. 법과 조약 없이 통치자 개인의 영향력으로만 공적 사안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본국과의 연관을 효과적으로 끊는 방식이다. 세실…
2021. 7. 15. 요약생활 81
아렌트의 사상에서 법이 행위(변화)의 조건인 세계와 안정성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법 개념이 아렌트의 사상에서 얼마나 강조되고 있냐는 것이다. 여러 문헌을 살펴보았을 때, 법철학적 맥락으로 아렌트를 읽는 시도는 꽤나 도발적일 수 있다. 아렌트 스스로는 법의 이념이 무엇이라고 정의하지도, 법의 중요성을 설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아렌트 사상을 해석하다보면, 해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