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과 말꾼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

어딜 가나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일꾼이라 불러보자. 일꾼은 말하기보다 일하기를 좋아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꾼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일꾼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일꾼이 한 일들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예컨대 프린터에 인쇄용지를 채워 넣는다든지,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정리한다든지,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쓰레기를…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3권

3권은 문학에 관한 장이다. 플라톤이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하자고 했다거나 단순 모방에 그친 예술의 가치를 폄하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어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거짓말에 관한 논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거짓말에 대한 논의는 2권에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에 통용되는 이야기가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은 그 자체로 선한 존재이므로 모든 선한 일의 원인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이나…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2권

2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권 막바지 트라쉬마코스의 논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2권은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핵심적 부분이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질문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주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자. 트라쉬마코스는, '올바른 것(τό δίκαιον)은 더 강한 자(ὁ κρείττων)의 이로운 것(τό συμφερον)'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강자도 사람이니, 실수하면 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것을 법률로 정하지…

[도서요약]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1권

첫 문장은 이렇다. "어저께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피레우스로 내려갔었네." 이 책 자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 안의 대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며, 화자들은 종종 다른 대화를 인용하기도 함.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 아리스톤은 플라톤의 아버지, 글라우콘은 플라톤의 형. 이 책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의미의 영역인 호로스(ὅρος)를 말 되는 이야기…

복잡한 머릿속 정리하기

안정성은 공적 영역의 영속. 공적 영역의 영속은 다음 세대를 위한 보존. 공적 영역의 영속성은 헛됨으로부터 보호될 때 가능. 노동하는 동물, 호모 파베르, 행위의 의미. 공동체와 정치체. 질서의 명목성으로 구분. 법의 의미는 제도와 유사한 의미/예술작품과 유사한 의미. 법체계는 선판단의 기준으로 기능. 구성원이 행위하는 모습 결정. 일상적인 일과 합법성의 느낌. 정치체의 본질은 변화를 포함한 지속. 행위의 본보기…

시스템, 계, 체계, 기계, 헌법

시스템(system)은 그리스어 쉬스떼마(σύστημα)에서 왔는데, 함께(쉰, σύν) 서있다(히스떼미, ἵστημι)는 말이 조합된 단어이다. 라틴어로 치면 콘시스토(cōnsistō)인데, 역시 함께(쿰, cum) 서있다(시스타레, sistāre)는 뜻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쉬스떼마는 콘스티투토(cōnstitūtō)와 더욱 가깝다. 콘시스토는 멈추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지만 콘스티투토는 설립하다 혹은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스티투토 역시 함께 세우다(스타투오, statuō)라는 의미로 형성됐다. 쉬스떼마는 집합체, 기계, 무리, 동맹을 의미한다. 단지 멈춘다는…

네거티브: 정치와 도덕의 경계에서

선거에서 상대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용인될까?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른바 네거티브다. 없는 사실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굳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상대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정치인에게 바람직한 모습일까? 일단, 네거티브는 도덕적이지 않다. 모든 사람이 서로 치부 드러내기에 몰두하는 세상은 끔찍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춘 것을 드러내면 그것은 더 이상 감춘 것이…

축구장에서 혁명을 보다

나는 영국 축구리그 소식을 가끔 듣는다. 영국에는 세계적인 축구리그로 인정받는 프리미어리그가 매년 열린다. 프리미어리그는 연간 성적이 나쁜 팀을 추려 하위리그로 강등시킨다. 오늘 들은 소식은 에버튼이라는 팀이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리그 잔류가 확정되는 순간, 관객들이 일시에 달려나왔다. 경기장에 뒤섞여 기뻐하는 선수와 관객들. 나는 그들의 기쁨을 보며 혁명을 떠올렸다. 모두가 한순간에 법을 어기는 광경은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우상

인간이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희생을 기리자’는 주장은 십자가를 성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십자가에 기도하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인간의 주장은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십자가 앞에서 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도도 신께 닿지 않는다’는 주장도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우리 교회에 오면, 혹은 내 설교를 들으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그 오만한 말이 우상을 만들어낸다. 그 외 모든 것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