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일, 보이지 않는 일

회계담당자 A 씨의 이야기다. 경력자 A 씨는 최근에 입사했다. 전임자 B가 퇴사한 까닭이다. 인수인계는 하루. A 씨가 없던 지난 2년 간의 이야기를 몇 시간에 압축해 들었다. B는 몇몇 계정을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고 했다. 몸이 아파 퇴사한다고도 했다. A 씨는 알겠다고 했다. B의 퇴사에는 상사와의 다툼도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계정을 들여다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몇몇…

우리가 사는 세계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4

티 내지 않은 일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드러난 것만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엄연히 내가 한 일인데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아무도 몰라줘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고독한 내가 한 일은 세상을 바꾼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사과를 먹으면…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3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티 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일꾼과 말꾼의 차이는 마음과 행위의 차이와 같다. 다시 말해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경계는 속마음과 드러내기 사이의 경계와 같다. 우리는 마음과 행위 사이에 그어진 경계와 비슷하게,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에 경계를 그어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맥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거나 우연한 행동이 알고 보니 같은 의도였다고 믿게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방법은 말과 몸짓뿐이다. 속마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2

일꾼과 말꾼 이야기의 핵심은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긴장이었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몇몇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아. 너무 헌신하면 나만 호구라니까.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데 일만 더 하고 있진 않은지 신경 써야겠어.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는 거야.’ 어쩌면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말꾼 저거는 진짜 낯설지가 않네, 꼭 누구처럼. 저런 사람 어딜 가나 있구나.’ 단지 직장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거나 뒷담화 따위의 단순한 위로에 그칠 것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를 원한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Pommes et oranges)>, 1889. 캔버스에 유화, 740㎜ x 930㎜. 오르세 박물관. 앙리 마티스, <테이블 위의 사과 그릇>, 1916. 캔버스에 유화, 1149㎜ x 895㎜. 크라이슬러 미술관.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는 바로 우리들이다. 먹고사는 데 바쁘지만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 직장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