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사실, 사실적 진리

이 글을 쓴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10월 3일, 글을 쓸 당시에는 하나의 사건에 여러 해석이 있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보고 "이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 행정부를 비롯해 여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그런 식의 말장난이 없다. 물론, '참사'를…

우리가 사는 세계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4

티 내지 않은 일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드러난 것만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엄연히 내가 한 일인데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아무도 몰라줘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고독한 내가 한 일은 세상을 바꾼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사과를 먹으면…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3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티 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일꾼과 말꾼의 차이는 마음과 행위의 차이와 같다. 다시 말해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경계는 속마음과 드러내기 사이의 경계와 같다. 우리는 마음과 행위 사이에 그어진 경계와 비슷하게,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에 경계를 그어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맥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거나 우연한 행동이 알고 보니 같은 의도였다고 믿게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방법은 말과 몸짓뿐이다. 속마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2

일꾼과 말꾼 이야기의 핵심은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긴장이었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몇몇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아. 너무 헌신하면 나만 호구라니까.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데 일만 더 하고 있진 않은지 신경 써야겠어.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는 거야.’ 어쩌면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말꾼 저거는 진짜 낯설지가 않네, 꼭 누구처럼. 저런 사람 어딜 가나 있구나.’ 단지 직장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거나 뒷담화 따위의 단순한 위로에 그칠 것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를 원한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Pommes et oranges)>, 1889. 캔버스에 유화, 740㎜ x 930㎜. 오르세 박물관. 앙리 마티스, <테이블 위의 사과 그릇>, 1916. 캔버스에 유화, 1149㎜ x 895㎜. 크라이슬러 미술관.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는 바로 우리들이다. 먹고사는 데 바쁘지만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 직장인이지만…

일꾼과 말꾼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

어딜 가나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일꾼이라 불러보자. 일꾼은 말하기보다 일하기를 좋아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꾼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일꾼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일꾼이 한 일들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예컨대 프린터에 인쇄용지를 채워 넣는다든지,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정리한다든지,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쓰레기를…

플라톤과 페미니즘과 통계와 능력주의

플라톤은 정치적 영역에서 성차별을 비판했다. 예를 들자면 『국가』의 이런 언급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오히려 여러 가지 성향이 양쪽 성의 생물들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455d-e) 플라톤은 페미니스트였는가?…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3권

3권은 문학에 관한 장이다. 플라톤이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하자고 했다거나 단순 모방에 그친 예술의 가치를 폄하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어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거짓말에 관한 논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거짓말에 대한 논의는 2권에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에 통용되는 이야기가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은 그 자체로 선한 존재이므로 모든 선한 일의 원인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이나…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2권

2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권 막바지 트라쉬마코스의 논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2권은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핵심적 부분이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질문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주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자. 트라쉬마코스는, '올바른 것(τό δίκαιον)은 더 강한 자(ὁ κρείττων)의 이로운 것(τό συμφερον)'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강자도 사람이니, 실수하면 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것을 법률로 정하지…

[도서요약]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1권

첫 문장은 이렇다. "어저께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피레우스로 내려갔었네." 이 책 자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 안의 대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며, 화자들은 종종 다른 대화를 인용하기도 함.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 아리스톤은 플라톤의 아버지, 글라우콘은 플라톤의 형. 이 책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의미의 영역인 호로스(ὅρος)를 말 되는 이야기…

복잡한 머릿속 정리하기

안정성은 공적 영역의 영속. 공적 영역의 영속은 다음 세대를 위한 보존. 공적 영역의 영속성은 헛됨으로부터 보호될 때 가능. 노동하는 동물, 호모 파베르, 행위의 의미. 공동체와 정치체. 질서의 명목성으로 구분. 법의 의미는 제도와 유사한 의미/예술작품과 유사한 의미. 법체계는 선판단의 기준으로 기능. 구성원이 행위하는 모습 결정. 일상적인 일과 합법성의 느낌. 정치체의 본질은 변화를 포함한 지속. 행위의 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