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는 만들어진 이야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2권 68절에는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가 나온다. 악어 입속의 거머리를 악어새가 먹어주는 대가로 악어는 악어새를 해치지 않는다는 모종의 약속을 서술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사』 9권 6장에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악어새가 악어 입속의 거머리를 먹는다기보다 악어에게 양치질을 해준다는 식으로 서술된다. 2012년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출간한 정준호 씨는 이 점을 지적한다. 바로, 기생과 공생 관계를…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④ | 칼로 물 베기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읽기 표류하는 자연, 분할하는 정신 우리는 참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봄바람 휘바이든' 사건에서, 1853년 조선 부산에 표류한 '사우스 아메리카 호'와, 1653년 조선 제주에 표류한 헨드릭 하멜 이야기까지.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먼 사건이 서로 유사한 이유는 바로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듣기는 말하기보다 공정한가 말하기는 대표적인 선택 행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전과 같은 랑그가 있습니다. 말문을 열 때, 우리는 랑그에서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해 내뱉습니다. 물론 첫 머리만 고르고 나머지는 습관처럼 연상해내지만요. 말하기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선택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택이…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① | 우리가 바이든을 날리면 안 되는 이유"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말이 표류한다니, 무슨 소리야? 문제는, 대통령실의 '날리면'이라는 해명이 등장하기 전까지, '날리면'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든'이라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요. MBC뉴스가 가장 처음 그렇게 듣고 대중에 보도했습니다. 그…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① | 우리가 바이든을 날리면 안 되는 이유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봄바람 휘바이든 2022년 9월 22일, MBC는 뉴스 한 꼭지를 보도합니다. 미국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촬영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은 현재 616만이라는 조회수를 올리고 있습니다. 'MBCNEWS' 유튜브 채널에서 전체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순위권에 오른 대부분의 영상이 게시된 지 몇 년 된 영상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3개월 된 동영상 치고는…

비밀에 부쳐야 할 것들

왜 연봉은 비밀에 부칠까 여러분의 회사는 안녕하신가요? 위에 인용된 기사처럼, 모든 사람의 연봉이 공개된 회사를 상상해봅시다. 누구는 얼마 받고, 누구는 얼마 받고 속속들이 다 아는 그런 회사 말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시괴담인가 싶겠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닙니다. 우선 회계부서에서 급여를 담당하는 분은 모든 사람의 연봉을 알고 있습니다. 회계부서장 또는 운영 임원도 직원들의 연봉을 알아야 할 것이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

사슴이 말이 되는 기적 세월호가 침몰하던 2014년, 교수신문 연말호에서는 그 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꼽혔습니다. 지록위마는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말인데, 사슴을 말이라 부른다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내시 조고의 이야기입니다. 조고는 위대한 폭군 진시황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던, 비선실세의 원조 격인 인물입니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그의 유서를 조작해 장남이 아닌 막내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웁니다. 황제의…

난삽한 단상

왜 한글이 적힌 티셔츠는 예뻐 보이지 않을까? 정신. 경계짓기. 무모순율, 배중률, 동일률. (아리스토텔레스 오르가논 참고 필요) 경계는 “같지 않다”에서 나온다. 동일률은 같은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묾. (칸트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원리에 대한 새로운 설명”에서 무모순율이 아니라 동일률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 물신주의, 페티시즘. 경계 뭉뚱그리기. 관계, 인과율. 원시 페티시즘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경계 흐리기. 근대 페티시즘은…

정치만큼 중요한 사내정치

“재영 씨는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왜 사내정치에는 둔해요?” 얼마 안 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들은 말이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에 다니던 시절, 같은 팀에서 일하던 팀원 한 분(아마 직급체계가 잡힌 대기업이었으면 쳐다도 못 볼 대선배였을 겁니다)께서 제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면 좋은 회사원이 될 수 없으리라는,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꺼내신, 쓴소리였을 겁니다.…

연애의 조건

연말이라 술자리가 많습니다. 서른 즈음 20대 후반 남자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비슷비슷할 겁니다. 이미 취업해 안정을 꿈꾸는 친구, 꿈을 좇아 일상을 바친 친구, 방황하는 친구…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사랑 이야기에는 모두가 눈을 반짝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떻게 만나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하는 대화는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요새 연애하는 사람 보기가 꽤 어렵습니다. 적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