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7. 요약생활 121

일요일, 맑음 결혼을 준비할 때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지원과 결혼반지를 맞췄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반지의 의미를 지원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뼈가 남는다고, 뼈만큼 오래 남는 건 바로 이 반지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반지에 유언을 새겨야 한다고. 지원과 나는 각자의 반지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기로 했다. 먼 훗날 21세기 대한민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땅을 파서 내 뼈를 발견하면,…

페미니즘에 관한 단상과 대화

영화 <오펜하이머>에 여성 인물이 적다는 비판이 돈다. 지능형 안티 페미니스트 같다. 그들은 모든 역할에 성별을 결부시킨다. 성별을 이유로 역량을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과장해서도 안 된다. 역할은 역량으로 결정해야 한다. 전통 사회는 역량이 아니라 성별로 역할을 결정하곤 했다. 분명 문제다. 그러므로 자연적 성별과 사회적 성역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아기를 낳고 젖먹이는 일…

글 잘쓰는 법

“(일반적 청중의 주의를 환기하는) 그러한 도입부는 무엇보다도 나쁜 쪽을 대변하거나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즐겨 사용한다. 그들에게는 사건 자체보다 다른 것을 강조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서론을 늘어놓으며 에둘러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3권 14장) 뼈 맞았다. 여태 내가 글 쓰던 방식. ‘이게 왜 중요하고, 어떻고, 나는 어떻게 이걸 발견했고,…

황혼 자살 –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

자살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젊은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틀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목숨을 끊는 연령대는 80세 이상이다. 2021년 기준 80세 이상 10만 명당 61.3명이 죽음을 선택했다. 전체 연령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명이었다. 80세 이상 노인들이 세 배 이상 빈번하게 세상을 등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유독 이때만 그런가 해서 찾아봤더니, 20년 넘게 80세…

요리

단어를 송송송송 썰어서 원고지에 담는다 대전제-소전제-결론 삼대 영양소를 갖추고 예를 들어 맛을 낸다 세상을 벨 수 있다니 펜은 칼보다 강하군 언제 내야 할까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가장 배고플 때 대접해야지 지금 인가? 아니, 지금 이지 아이 이것 참, 지금 은 칼로 물 베듯 자꾸만 흐르는데 글은 식어가는데 밥 때 다 지나는데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하여

나름 의미 있는 견해라 본다. 그러나 이분도 역시 특정한 정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절대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적 시각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이 말만큼은 중립적으로 할 수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원전 오염수 문제는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의 사례와 비슷하게 보아야 한다. 탈리도마이드는 도입 당시 동물실험에서 별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됐다. 입덧에 대한 효능이 발견되면서, 불면증, 감기, 두통에 효능 좋은…

2023. 7. 3. 요약생활 119

월요일, 흐림 지난 주말은 정신없었다. 토요일 오랜만에 오전 독서모임을 나갔다.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권을 뗐다. 이사와 병행하느라 다른 책처럼 꼼꼼하게 읽지 못했다. 오후 독서모임에서는 카뮈 <이방인>을 읽는다. 유명한 책이어서 그런지, 독서모임에 사람이 많이 왔다. 저녁에는 동네 친구들과 삼겹살 소주 파티를 했다. 일요일에는 내내 갓또와 뒹굴었다. 갓또와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듯하다. 지난주까지만해도 평일 저녁에는 정리를…

2023. 6. 27. 요약생활 118

화요일, 흐림 이사 후 첫 출근. 아침에 길을 헤매서 10분 지각했다. 이사해서 교통편은 확실히 편한데, 어색하다. 예전에 지각했을 때에는 아무도 안 마주쳤는데, 오늘은 유독 많이 만났다. 바쁜 시기에 휴가 썼다고 핀잔도 들었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는 법. 끄덕끄덕 했다. 집 생각이 나서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집이 너무 좋아서 가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