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system)은 그리스어 쉬스떼마(σύστημα)에서 왔는데, 함께(쉰, σύν) 서있다(히스떼미, ἵστημι)는 말이 조합된 단어이다. 라틴어로 치면 콘시스토(cōnsistō)인데, 역시 함께(쿰, cum) 서있다(시스타레, sistāre)는 뜻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쉬스떼마는 콘스티투토(cōnstitūtō)와 더욱 가깝다. 콘시스토는 멈추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지만 콘스티투토는 설립하다 혹은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스티투토 역시 함께 세우다(스타투오, statuō)라는 의미로 형성됐다. 쉬스떼마는 집합체, 기계, 무리, 동맹을 의미한다. 단지 멈춘다는…
[태그:] 사색
네거티브: 정치와 도덕의 경계에서
선거에서 상대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용인될까?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른바 네거티브다. 없는 사실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굳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상대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정치인에게 바람직한 모습일까? 일단, 네거티브는 도덕적이지 않다. 모든 사람이 서로 치부 드러내기에 몰두하는 세상은 끔찍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춘 것을 드러내면 그것은 더 이상 감춘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우상
인간이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희생을 기리자’는 주장은 십자가를 성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십자가에 기도하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인간의 주장은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십자가 앞에서 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도도 신께 닿지 않는다’는 주장도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든다. ‘우리 교회에 오면, 혹은 내 설교를 들으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그 오만한 말이 우상을 만들어낸다. 그 외 모든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끼어들기
섣불리 어떤 공동체에 끼어들려 하지 말라. 혐오를 불러 쫓겨날 수 있다. 공동체는 집단 이상이다. 공동체는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기만 한 집단이 아니라, 언어와 관습으로 묶인 관계이다. 그들만이 아는 말이 있고, 그들만 하는 행동의 양식이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은 공동체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에 있더라도 쫓겨날 수 있다. 공동체 밖에 있던 사람은 공동체의…
겨울 지나 봄
얼었던 분수가 터졌다 버들 여린 잎 돋아나고 목련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해서 목놓아 봄 부르는 새된 소리들 남해는 벚꽃이 한철이라는데 이곳은 아직 꽃망울이 수줍다 어디는 겨울, 어디는 봄 벛꽃의 꽃말은 부끄러움 먼 흑토의 밀밭에서는 수많은 세계가 사그라들고 나는 연못가에 앉아 벚꽃을 본다 평화, 사랑, 인류 이따위 거창한 것들을 떠올리면서 결코 닿지 못할 길을 닦으면서 빼앗긴 밀밭에도…
정치인이 ‘함께 살자’는 말을 멈출 때 나타나는 일들…
유대인 갈라치기 → 인종 우월주의 주장하기 → 장애인 학살하기(약 30만) → 유대인 학살하기(약 600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장애인을 상대로 검증된(!) 학살 시스템이었다. '안락사 프로그램(Aktion T4)'이라 명명된 장애인 학살은 '독일민족의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선동으로 30만 명을 죽인 정책이다. 그 학살은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시기를 앞당길 뿐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교양 있는 사람이 되려면
교양인이라고 하면 일단 타인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특성은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와 반대로 교양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의 태도가 대상의 보편적인 성질에 맞추어지지 않은 채 그의 개인적인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교양이 없는 사람은 단지 자기 멋대로 처신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염두에 두지 않기…
범죄가 유능하다는 착각
범죄는 상식으로 알아본다. 합법이어도 범죄같은 짓들이 있고, 불법이어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만한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차별은 합법이었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빈곤으로 절도에 내몰린 장 발장에게 많은 사람들이 동정하는 것과 대조된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 상식을 배운다.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과거의 여러 사례들을 기억해 현재의 사안을 평가하는 데 참고하는 적당한 기준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현명함
때로는 지식을 말하기보다 말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내기보다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때가 있다. 현명함은 행위와 무위 사이에 있다. 양 극단을 모두 떠올릴 줄 알아야 중간을 선택할 수 있다. 중간만 가라는 건 하나만 아는 소리다. 덮어놓고 반대만 하는 것들은 양자택일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처벌로서의 선거
함께 살자고 하면 싸움도 정치가 된다.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 정치도 싸움밖에 안 된다. 선거는 본디 싸움이다. 선거가 끝난지 언젠데 피바람이 불 것만 같다. 같이 살자는 말이 안 나와서 그렇다. 패배자를 죽음으로 내몬 역사가 있어서 그렇다. 소위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들은 저쪽이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서 이쪽에 표를 던진다. 범죄는 그야말로 ‘너 죽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