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우정이란 것도 있었다.

나는 절교를 즐기는 사람이다. 우정은 잘못으로 깨진다.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는 그가 잘못을 깨닫도록 돕는다. 깨달으면 용서하고 깨닫지 못하면 떠난다. 그래서 내게는 용서와 절교 모두 즐거운 일이다. 용서와 절교 모두 자유롭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가 따르고자 하는 것에는 반드시 복종한다. 가족이라든지 공부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얽매임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니까.…

[취미 철학 독서모임] 모른다는 걸 알기 위해 우리는 공부합니다.

모른다는 걸 알기 위해 우리는 공부합니다. 여러분은 철학책을 왜 읽으시나요?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를 하기 위해서? 아마 세상의 사람만큼 많은 의견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수많은 의견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바로 ‘나의 무지를 깨우친다’는 것 아닐까요? 스페인의 현대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그게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2024. 1. 29.-2. 5. 요약생활 166-173

2024. 1. 29. 월. 포근함. 태국 형과 공부에 관해 전화했다. 내 문제의식이 키르케고르의 박사논문과 닿아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2024. 1. 30. 화. 포근했다 추워짐. 바쁘던 일을 모두 끝냈다. 퇴근하고 하근 선배와 밥을 먹었다. 밥만 먹으려는데 이야기가 재밌어서 막걸리를 마셨다. 회사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관계를 추구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관계가 본분을 집어삼키면…

[작문]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0. 들어가며 첫 문장은 이렇다. πᾶσα τέχνη καὶ πᾶσα μέθοδος, ὁμοίως δὲ πρᾶξίς τε καὶ προαίρεσις, ἀγαθοῦ τινὸς ἐφίεσθαι δοκεῖ. 모든 기예와 모든 방법, 행위나 선택 같은 것들은, 어떤 좋은 것에 향한 것으로 보인다. (1094a1) 그러므로 이 책의 목표는, [1] 좋은 것이 무엇인지, [2] 우리가 어떻게 좋은 것을 제작/탐구/행위/선택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제작/탐구/행위/선택은 인간의…

국내 최초 전세계약서, 전세제도의 유래

고생원노시사전당문기(高生員奴時舍典當文記) (1898),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문서 178123번. 이 문서는 1898년 조선시대에 시사(時舍)라는 인물이 체결한 전세계약서이다. 문서에는 시사가 초가집 세 칸과 딸린 마당, 사랑채 한 칸을 내어주고 60냥을 빌린 내용이 담겼다. 다음은 내가 어설픈 실력으로 조선 말기의 한문 문서를 번역한 결과다. 大韓光武 二年 戊戌 十月十五日 대한광무 2년 무술 10월 15일 前 明文 (당사자) 앞 증명서 右 明文…

대한민국 법체계 목차

육법(헌법,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은 대한민국 법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각 법령의 목차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강 알 수 있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해보자면, 국가가 해석한 세계가 법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요체는 육법이다. 세계는 인격체의 해석과 그에 대한 인정으로 구성된다. 나와 너의 해석이 만나면 그것이 곧 세계다. 여기서 '너'의 자리에 가장 일반적인 인격체가 들어갈…

플라톤과 페미니즘과 통계와 능력주의

플라톤은 정치적 영역에서 성차별을 비판했다. 예를 들자면 『국가』의 이런 언급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오히려 여러 가지 성향이 양쪽 성의 생물들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455d-e) 플라톤은 페미니스트였는가?…

[도서요약] 플라톤 『국가(ΠΟΛΙΤΕΙΑ)』 읽기 | 1권

첫 문장은 이렇다. "어저께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피레우스로 내려갔었네." 이 책 자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 안의 대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며, 화자들은 종종 다른 대화를 인용하기도 함.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 아리스톤은 플라톤의 아버지, 글라우콘은 플라톤의 형. 이 책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의미의 영역인 호로스(ὅρος)를 말 되는 이야기…

시스템, 계, 체계, 기계, 헌법

시스템(system)은 그리스어 쉬스떼마(σύστημα)에서 왔는데, 함께(쉰, σύν) 서있다(히스떼미, ἵστημι)는 말이 조합된 단어이다. 라틴어로 치면 콘시스토(cōnsistō)인데, 역시 함께(쿰, cum) 서있다(시스타레, sistāre)는 뜻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쉬스떼마는 콘스티투토(cōnstitūtō)와 더욱 가깝다. 콘시스토는 멈추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지만 콘스티투토는 설립하다 혹은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스티투토 역시 함께 세우다(스타투오, statuō)라는 의미로 형성됐다. 쉬스떼마는 집합체, 기계, 무리, 동맹을 의미한다. 단지 멈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