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읽기 표류하는 자연, 분할하는 정신 우리는 참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봄바람 휘바이든' 사건에서, 1853년 조선 부산에 표류한 '사우스 아메리카 호'와, 1653년 조선 제주에 표류한 헨드릭 하멜 이야기까지.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먼 사건이 서로 유사한 이유는 바로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인의 철학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듣기는 말하기보다 공정한가 말하기는 대표적인 선택 행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전과 같은 랑그가 있습니다. 말문을 열 때, 우리는 랑그에서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해 내뱉습니다. 물론 첫 머리만 고르고 나머지는 습관처럼 연상해내지만요. 말하기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선택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택이…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② | 표류하는 언어에는 돛이 없다
이전 글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① | 우리가 바이든을 날리면 안 되는 이유" 읽기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말이 표류한다니, 무슨 소리야? 문제는, 대통령실의 '날리면'이라는 해명이 등장하기 전까지, '날리면'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든'이라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요. MBC뉴스가 가장 처음 그렇게 듣고 대중에 보도했습니다. 그…
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① | 우리가 바이든을 날리면 안 되는 이유
이 글은 얼룩소에 게시되었습니다. 글 읽으러 가기 봄바람 휘바이든 2022년 9월 22일, MBC는 뉴스 한 꼭지를 보도합니다. 미국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촬영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은 현재 616만이라는 조회수를 올리고 있습니다. 'MBCNEWS' 유튜브 채널에서 전체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순위권에 오른 대부분의 영상이 게시된 지 몇 년 된 영상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3개월 된 동영상 치고는…
비밀에 부쳐야 할 것들
왜 연봉은 비밀에 부칠까 여러분의 회사는 안녕하신가요? 위에 인용된 기사처럼, 모든 사람의 연봉이 공개된 회사를 상상해봅시다. 누구는 얼마 받고, 누구는 얼마 받고 속속들이 다 아는 그런 회사 말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시괴담인가 싶겠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닙니다. 우선 회계부서에서 급여를 담당하는 분은 모든 사람의 연봉을 알고 있습니다. 회계부서장 또는 운영 임원도 직원들의 연봉을 알아야 할 것이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
사슴이 말이 되는 기적 세월호가 침몰하던 2014년, 교수신문 연말호에서는 그 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꼽혔습니다. 지록위마는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말인데, 사슴을 말이라 부른다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내시 조고의 이야기입니다. 조고는 위대한 폭군 진시황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던, 비선실세의 원조 격인 인물입니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그의 유서를 조작해 장남이 아닌 막내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웁니다. 황제의…
우리가 사는 세계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4
티 내지 않은 일은 세계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드러난 것만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불합리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엄연히 내가 한 일인데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아무도 몰라줘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고독한 내가 한 일은 세상을 바꾼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사과를 먹으면…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3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티 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일꾼과 말꾼의 차이는 마음과 행위의 차이와 같다. 다시 말해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경계는 속마음과 드러내기 사이의 경계와 같다. 우리는 마음과 행위 사이에 그어진 경계와 비슷하게,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에 경계를 그어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맥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거나 우연한 행동이 알고 보니 같은 의도였다고 믿게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방법은 말과 몸짓뿐이다. 속마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2
일꾼과 말꾼 이야기의 핵심은 일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긴장이었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몇몇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아. 너무 헌신하면 나만 호구라니까.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데 일만 더 하고 있진 않은지 신경 써야겠어.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는 거야.’ 어쩌면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말꾼 저거는 진짜 낯설지가 않네, 꼭 누구처럼. 저런 사람 어딜 가나 있구나.’ 단지 직장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거나 뒷담화 따위의 단순한 위로에 그칠 것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를 원한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Pommes et oranges)>, 1889. 캔버스에 유화, 740㎜ x 930㎜. 오르세 박물관. 앙리 마티스, <테이블 위의 사과 그릇>, 1916. 캔버스에 유화, 1149㎜ x 895㎜. 크라이슬러 미술관.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는 바로 우리들이다. 먹고사는 데 바쁘지만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 직장인이지만…
일꾼과 말꾼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
어딜 가나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일꾼이라 불러보자. 일꾼은 말하기보다 일하기를 좋아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꾼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일꾼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일꾼이 한 일들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예컨대 프린터에 인쇄용지를 채워 넣는다든지, 회의가 끝난 뒤 의자를 정리한다든지,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쓰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