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맑음 결혼을 준비할 때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지원과 결혼반지를 맞췄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반지의 의미를 지원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뼈가 남는다고, 뼈만큼 오래 남는 건 바로 이 반지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반지에 유언을 새겨야 한다고. 지원과 나는 각자의 반지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기로 했다. 먼 훗날 21세기 대한민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땅을 파서 내 뼈를 발견하면,…
요약생활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요약하는 카테고리
2023. 7. 26. 요약생활 120
화요일, 구름많음 지원과 함께 이사 떡을 돌리고 받은 답장. 낯선 이가 공포라는 요즈음, 두려움의 문지방을 넘어 본다.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는 악인, 누구에게는 은인일 테니. 다 그렇게 사는 거다.
2023. 7. 3. 요약생활 119
월요일, 흐림 지난 주말은 정신없었다. 토요일 오랜만에 오전 독서모임을 나갔다.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권을 뗐다. 이사와 병행하느라 다른 책처럼 꼼꼼하게 읽지 못했다. 오후 독서모임에서는 카뮈 <이방인>을 읽는다. 유명한 책이어서 그런지, 독서모임에 사람이 많이 왔다. 저녁에는 동네 친구들과 삼겹살 소주 파티를 했다. 일요일에는 내내 갓또와 뒹굴었다. 갓또와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듯하다. 지난주까지만해도 평일 저녁에는 정리를…
2023. 6. 27. 요약생활 118
화요일, 흐림 이사 후 첫 출근. 아침에 길을 헤매서 10분 지각했다. 이사해서 교통편은 확실히 편한데, 어색하다. 예전에 지각했을 때에는 아무도 안 마주쳤는데, 오늘은 유독 많이 만났다. 바쁜 시기에 휴가 썼다고 핀잔도 들었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는 법. 끄덕끄덕 했다. 집 생각이 나서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집이 너무 좋아서 가고만 싶었다.…
2023. 6. 26. 요약생활 117
월요일, 흐리고 비 휴가를 쓰고 이삿짐 정리를 마저 했다. 온더보더에서 멕시코 음식으로 브런치를 해결했다.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오전에는 지원과 이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샀다. 정수기 설치를 완료하고 가스레인지를 개통하기 위해 기사가 방문했다. 점심에는 집에서 정리를 하며 기사님들을 기다렸다. 가스 기사가 갓또를 아주 좋아했다. 오후에는 다시 홈플러스에서 필요한 물품을 샀다. 막바지에는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정신을 잃을…
2023. 6. 24. 요약생활 115
토요일, 맑음 이사했다. 복층 원룸 월세 빌라에서 대단지 투룸 전세 아파트로 간다. 이제 공식적으로(?) 지원과 함께 산다. 하루종일 짐을 싸고 옮겼다. 군 시절 전투준비태세 훈련 때나 쓰던 커다란 PP박스에 옮길 짐을 넣었다. 전에 살던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이어서 등에 짐을 지고 수없이 오르내렸다.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다행히 손수레를 쓸 수 있었다. 옛집과 새집을 오가며 상차와…
2023. 6. 25. 요약생활 116
일요일, 흐림 생필품 구입, 어머니 생신 가족 식사, 이삿짐 마저 정리 08:30 침대에서 일어남 10:00 브런치로 맥모닝 세트 먹음. 멀티탭 배선작업 완료하고 컴퓨터 설치 예정… 글 쓰고 이사 박스 정리함. 14:30 어머니 생신 기념 가족식사 참석. 부천 복사꽃필무렵. 16:30 가족들이 집에 와 갓또 보고 감. 누나가 스탠드 선물해줌. 홈플러스 닫혀서 멀티탭 못 삼. 19:00 푹…
2023. 5. 30. 요약생활 114
화요일, 흐림 나는 국어선생님들을 사랑한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고 보니 모두 국어선생님이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어제는 중학 시절에 만난 국어선생님과 저녁을 먹었다. 그저께는 국어선생님을 하던 고교 친구와 길게 통화했다. 이 두 국어선생님은 정말 선생님이어서 언제 어디서든 매번 배운다. 집앞 꼼장어 집에서 만나면 그곳이 교실이 되고, 실없는 안부전화를 하면 그야말로 원격교육이 된다. 그래서 한 선생님을 만나면…
2023. 5. 23. 요약생활 113
화요일, 맑음 내일은 결혼사진을 찍는다. 요 며칠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먹고 있다. 우락부락하게 몸 키울 생각은 없지만, 별로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진이면 평생 남는 건데, 멀쩡하게는 보여야 하지 않겠어? 몸은 습관 대로 큰다. 몸은 마치 지층과 같아서 켜켜이 퇴적된 무늬를 갖는다. 하루 양치 거른다고 충치가 생기겠냐마는 그런 행적들이 충치를 낳는…
2023. 4. 24. 요약생활 112
월요일, 구름 조금 어제는 상견례를 했다. 공식적인 혼례의 시작이다. 이 시간부터, 혼례는 우리 둘이 논의하던 일에서 가족 전체가 논의하는 일로 격상됐다. 다행히 모두가 환대해주셨다. 화기애애했다. 지원이 시작부터 눈물을 쏟아 나도 울 뻔했다. 다 마친 뒤에 왜 울었냐 물어보니 벅차서 그랬다고 한다. 나도 내가 왜 울 뻔했는지 몰랐는데,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상견례가 끝난 뒤에는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