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는 것

엄마는 나를 버렸다 엄마도 죽냐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아니라고 안 죽는다고 나를 안아줬었다 가루가 된 엄마 흰 단지에 엄마를 담고 한 아름도 안 되는 엄마를 양손으로 붙잡았을 때 나는 더위로 속이 끓었다 하필이면 여름날에 이 무더위에 푹푹 찌는데 손에 땀은 자꾸 나는데 45인승 버스 앞 자리 누나 앉고 나 앉고 삼촌 매형 친구들 다 합쳐…

선과 악

악을 몰아내면 선은 승리하는가?세상 모두가 거짓말만 하면 거짓은 사라지겠지.참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진다니까.그런데 선행은?선행도 악행도 모든 이가 몰두하면그 사이 놓인 울타리무너지겠네마니또는 성자의 상징선행이 드러나면 위선이라안으로 안으로 주름 속으로선행은 범죄처럼 가리워지네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는 성자는전범재판을 면할 수 있을까?

부엉이

부엉이가 고양이의 눈을 삼켰다고양이는 볕을 쬐고 있었다부엉이의 발톱이 고양이의목과 갈빗대 사이를 파고들 때고양이도 발톱을 꺼냈다죽음은 멀리서 생명을이미 바라보고 있었다고양이가 볕을 따라 여기에서 저기로옮겨갈 때 죽음은 사각도 없이생명을 감시하다가 소리 없이날아들어 낚아챘다부엉이는 발톱을 다듬었다고양이는 부엉이가 앉은 나무를날지 못할 발톱으로 긁었다고양이는 부엉이가 착륙할 때까지만 해도숨이 붙어 있었다부엉이의 발톱이 신경을 끊어목 아래는 이미 죽었지만고양이는 눈을 깜빡였다마지막 조감도를 기억하려고

미아

출근길 개찰구사람들이 흐른다삑 삑 우는 검표원부정맥을 알리는 기계의 울음정파를 알리는 텔레비전의 사인파한켠에 소용돌이“방화역으로 가려면 어디로“가야 하나요 말도 맺지 못하고무표정한 흐름을 맴도는 사람 한 명“여기로 가서 5호선”타야 한다고뒤로 손짓하면서 앞으로휩쓸려가면서안도하면서부끄러워하는

골골송

우리는 언제까지날짜를 셀까순간을 건너기도 이렇게 힘든데고양이를 보면서나는 생각했다가르릉 소리를 들으면서푸리에는복잡한 소리와 단순한 소리를 구분하고 복잡한 소리가 단순한 소리들로 구성된다는 복잡한소리를 했다 고양이의고운 저 소리도신디사이저건반 몇 개를동시에 누르면똑같은 소리가 난다는 소리다소리는힐베르트의 거리와제논의 순간을 넘어내게 닿아 귓전을 울린다울리면서 고양이 네가 죽을 때뚝그칠 것이다나는 왜 너의 장례를 치러야 할 운명일까

노래

말이 되니분노를 노래하라니누군가 죽고 빼앗기고범죄자는 의기양양 살아가는데눈물이 흐르고 화가 나는데노래하라니아름답게 이야기하라니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말이 안 되지피는 피로 갚아야지싸우고 쪼개고 다그쳐야지나는 그날 이미 죽었으니까노래는 생명의 바람이니까마치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이름도 없이

양파

내 얼굴에서젊음 한 조각 떼어내면잘라낸 흔적이 이마에가로로 한 줄우리 사이에서먹한 마음 서걱서걱벽 쌓는 소리가르는 소리나는 밥을 짓다가도마에 토막난 양파들이내 얼굴 같아서 우리 같아서눈물을 흘렸다 아주 조금

요리

단어를 송송송송 썰어서 원고지에 담는다 대전제-소전제-결론 삼대 영양소를 갖추고 예를 들어 맛을 낸다 세상을 벨 수 있다니 펜은 칼보다 강하군 언제 내야 할까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가장 배고플 때 대접해야지 지금 인가? 아니, 지금 이지 아이 이것 참, 지금 은 칼로 물 베듯 자꾸만 흐르는데 글은 식어가는데 밥 때 다 지나는데

메스

나는 눈으로도 벤다 세상을 조각내면 점 하나에 무한한 거리 두 점 사이엔 영원히 만나지 않을 카오스와 가이아 점 하나를 더하면 만들어진 신이 내게 추앙을 강요하고 마치 점이 없다는 듯이 세상을 쪼개면 이곳에 존재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평행선 상처는 깔끔해야 빨리 아물어 종이에 벤 손가락을 입에 물며 말했다 입에는 변기보다 많은 세균이 살아 그들의 고향은 장내세균총 켜켜이…

가족이란

별수없는 것 함께하는 것 맺으려면 어찌저찌 맺히는데 끊으려면 영 쉽지 않은 것 대법원 등기소에 새긴 타투 같은 것 유골 같은 것 가까운 것 그래서 때로 먼 것 가끔은 잊고 싶은데 잊히지는 않는 것 슬픈 것 가족은 가족이야 식구야 웃음이야 책임감이야 내밀한 표정이지만 속마음은 아니야 방문 닫고 이불 뒤집어 쓰고 우는 거야 안이면서도 겉에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