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함께 살자’는 말을 멈출 때 나타나는 일들…

유대인 갈라치기 → 인종 우월주의 주장하기 → 장애인 학살하기(약 30만) → 유대인 학살하기(약 600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장애인을 상대로 검증된(!) 학살 시스템이었다. '안락사 프로그램(Aktion T4)'이라 명명된 장애인 학살은 '독일민족의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선동으로 30만 명을 죽인 정책이다. 그 학살은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시기를 앞당길 뿐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공감도 지능순

[공감도 지능순] 이준석의 글을 보고 놀랐다. 그는 요 며칠 단 한 번도 혐오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쓴 글은 하나같이 혐오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맥락을 읽는 동물이다. 그는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점에서 여성혐오를 했는지, 장애인혐오를 했는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시도 그 자신이 어떤 점에서 혐오를…

범죄가 유능하다는 착각

범죄는 상식으로 알아본다. 합법이어도 범죄같은 짓들이 있고, 불법이어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만한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차별은 합법이었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빈곤으로 절도에 내몰린 장 발장에게 많은 사람들이 동정하는 것과 대조된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 상식을 배운다.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과거의 여러 사례들을 기억해 현재의 사안을 평가하는 데 참고하는 적당한 기준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현명함

때로는 지식을 말하기보다 말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내기보다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때가 있다. 현명함은 행위와 무위 사이에 있다. 양 극단을 모두 떠올릴 줄 알아야 중간을 선택할 수 있다. 중간만 가라는 건 하나만 아는 소리다. 덮어놓고 반대만 하는 것들은 양자택일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처벌로서의 선거

함께 살자고 하면 싸움도 정치가 된다.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 정치도 싸움밖에 안 된다. 선거는 본디 싸움이다. 선거가 끝난지 언젠데 피바람이 불 것만 같다. 같이 살자는 말이 안 나와서 그렇다. 패배자를 죽음으로 내몬 역사가 있어서 그렇다. 소위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들은 저쪽이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서 이쪽에 표를 던진다. 범죄는 그야말로 ‘너 죽고 나…

무능이 자랑이 되는 시대

공감능력을 잃었음을 자랑스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그들은 ‘내가 이렇게 똑똑해서 너희와는 시각이 달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비극적인 사건을 보고도 우스개랍시고 보험료를 계산한다든지, 삶의 막다른 길에서 곡기를 끊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앞에서 게걸스럽게 배달음식을 처먹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비극을 한낱 농담거리로 삼는다. 그들의 유머에는 금기가 없다. 그들은 자기 입으로 내뱉는 헛소리를…

피가 끓는다는 느낌

오늘 저녁 여섯 시에 거리에서 연설을 했다.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피가 끓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이런 느낌은 정훈장교 시절 300명을 상대로 교육할 때에도 느껴본 적 없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소수의 사람만 만나 공적인 말하기 능력을 잃은 줄 알았다. 지난 1년 동안 공부에 전념하면서는 단지 스승님이나 선현과 일대일로만 대화했다. 나는 말할 수…

작업정신

나는 지난 1년 동안 학문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정말 밥먹고 책만 봤다. 읽고, 쓰고, 때로는 밥을 거르거나 잠도 자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음미하느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문과 인격의 도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다 보니 언제 어떤 성취를 이루어야겠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다. 학위논문을 언젠가 쓰게 될 것이라는 막연함만…

좋은 유세문 쓰기

보좌관님이 꼬마 비서에게 유세문을 쓰라는 미션을 내렸다. 논문만 써 버릇하다보니 영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보좌관님, 좋은 유세문이란 무엇입니까?" "좋은 유세문이라... 좋은 유세문이 뭐냐?" 보좌관님은 수다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꽤 좋은 노하우라 생각해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여기 남기는 글은 그가 말한 그대로라기보다, 내가 소화한 바이다. 유세(遊說)는 말하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보좌관으로 태어나기

입법보조원으로 국회에 출근한 첫 날이다. 입법보조원은 말하자면 보좌관이라는 최종 테크를 타기 위한 기초 직업이다. 테란으로 치면 마린, 메이플로 치면 초보자다. 건물에 들어서는 법부터, 점심에 밥 먹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아주 인상적인 건, 매순간 생각할 것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감시와 통제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 공무원의 주기적 방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