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 씨는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왜 사내정치에는 둔해요?” 얼마 안 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들은 말이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에 다니던 시절, 같은 팀에서 일하던 팀원 한 분(아마 직급체계가 잡힌 대기업이었으면 쳐다도 못 볼 대선배였을 겁니다)께서 제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면 좋은 회사원이 될 수 없으리라는,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 부러 꺼내신, 쓴소리였을 겁니다.…
생각
연애의 조건
연말이라 술자리가 많습니다. 서른 즈음 20대 후반 남자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비슷비슷할 겁니다. 이미 취업해 안정을 꿈꾸는 친구, 꿈을 좇아 일상을 바친 친구, 방황하는 친구…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사랑 이야기에는 모두가 눈을 반짝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떻게 만나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하는 대화는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요새 연애하는 사람 보기가 꽤 어렵습니다. 적어도…
보이는 일, 보이지 않는 일
회계담당자 A 씨의 이야기다. 경력자 A 씨는 최근에 입사했다. 전임자 B가 퇴사한 까닭이다. 인수인계는 하루. A 씨가 없던 지난 2년 간의 이야기를 몇 시간에 압축해 들었다. B는 몇몇 계정을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고 했다. 몸이 아파 퇴사한다고도 했다. A 씨는 알겠다고 했다. B의 퇴사에는 상사와의 다툼도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계정을 들여다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몇몇…
구글 타임라인
구글 타임라인이라는 사이트를 아시는지? https://timeline.google.com/ 스마트폰에 구글 계정을 연동하고, 위치추적을 승인하면, 내가 언제 어디에 어떤 교통수단으로 이동했는지 지도에 표시된다. 구글이 내 위치를 모조리 보고 있다는 점이 꺼림칙하지만, 나는 이걸 매일 아침 확인한다. 아, 어제 여기를 다녀왔구나. 그래, 어제도 술을 마셨구나. 어제는 야근을 오래 했구나... 나중에 내가 다닌 경로를 다 겹쳐서 히트맵을 찍어보면 재밌겠다. 칸트가 말했듯이,…
명백한 사실, 사실적 진리
이 글을 쓴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10월 3일, 글을 쓸 당시에는 하나의 사건에 여러 해석이 있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보고 "이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당시 윤석열 행정부를 비롯해 여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그런 식의 말장난이 없다. 물론, '참사'를…
안전불감증
또 그놈의 안전불감증. 우습다.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 세상에 어디 있나. 원래 죽음은 감각되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어찌 사나. 믿음 없이 살면 모두가 신경쇠약에 걸린다. 안전하다는 믿음이 우리를 배신할 때 우리는 죽는다. 모든 삶은 안전불감증 위에 놓인다. 안전불감증이라 비난받지 않을 죽음은 세상에 없다. 정부의 책임은 국민의 안전불감증을 지켜주는 것이고, 이웃의 책임은 타인의 죽음을…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에는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 말했고, 이태원에 사람들이 스러지고 나니 세상의 절반이 가만히 있으라 말한다.
친구
문득, 어떤 이유로, 내가 떠오른다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게, 참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 내가 떠오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검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검도를 오래 수련해온 친구를 떠올렸다. 그에게 검도에 관해 물었더니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키워드가 있다는 게 좋다면서. 또 어떤 날은, 아렌트를 공부하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아렌트의…
상투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말은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죽음에 이 말을 하면 안 된다. 내 가족이 죽었을 때나 죽음의 원인을 아직 모를 때와 같은 경우에는 명복을 비는 것조차 실례가 될 수 있다. 명계로 일컫는 저승에서 복을 받으라는 말은, 몇몇 상황에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는 상황에 맞게 쓰여야 한다. 비슷한…
민스키 모멘트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란 과도한 부채로 인한 경기 호황이 끝나고, 채무자의 부채상환능력 악화로 건전한 자산까지 팔기 시작하면서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시작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2021. 12. 7. 기획재정부 네이버 블로그 부채는 믿음, 자본은 본질이다. 자산은 둘 모두를 포함한 현상이다. 믿음과 본질의 괴리가 커지면 현상은 붕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