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연약합니다. 우리 모두가 처한 시간이라는 이 거스를 수 없는 조건이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향하는 도피처는 기억이라는 영원의 세계입니다.
제가 김선욱 교수님을 처음 뵌 날이 2015년 7월, ‘사회정치철학’ 학부 수업에서였으니 오늘로 꼭 10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날의 저는 평생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수님께서 제게 학기 말 성적을 100점에서 굳이 1점을 깎은 99점으로 주셔서 생긴 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심 덕분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의 저는 무작정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이미 잘 알고 지낸 제자에게 말씀해주시듯이 당신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시며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말하자면 세계가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이 새롭게 시작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는 아니겠지만 교수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가 됐습니다.
2.
교수님께 수학하며 제가 배운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제 자신의 무지를 마주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어설픈 원고를 교수님께 보여드릴 때마다 제게 해주신 조언은 “언어를 정교하게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는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그 말씀은 학자라면 취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정교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낱말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다고 여기는 오만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익숙한 낱말이라도 처음 옹알이를 트던 때처럼 새롭게 여겨야 합니다.
제가 얼마나 ‘아는 체’로 덧씌운 삶을 살아왔는지, 그런 태도가 배움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교수님으로부터 학문의 기술이 아니라 학자의 태도를 배운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멈추었습니다만, 저의 배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언제 어디에 있든지 제 마음 한켠에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가르침 덕에,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학자의 문제의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오늘 이 자리는 교수님께 동문수학한 수많은 제자들을 대표해 교수님에 대한 제자의 마음을 언어로 가다듬어 기억에 남기는 자리입니다. 제게는 매우 과분하지만, 그래도 이 귀한 기회를 허비할 수 없어 송사를 끝마치기 전에 김선욱 교수님의 사상에 대해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해한 교수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리한 겸손’입니다. 언어의 과잉을 경계하는 교수님의 작품세계는 그 자체로 시적 은유가 됩니다. 작품 전면에 드러나는 화자는 매번 한나 아렌트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아렌트를 불러세우는 이야기꾼은 언제나 사상가 김선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아렌트 읽기를 넘어, 김선욱 읽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4.
교수님께서는 2001년 출간하신 『정치와 진리』의 절판을 결심하시면서,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이제 누구에게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의견의 영역이다. 진리 주장으로 상대를 압도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과 설득으로 정치적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면, ‘누구나 다 아는 소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그 말이 신선했었다.” 그러고는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책의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을 언젠가부터 받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정치의 영역에서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배제의 정치가 극성을 부리고 각지에서 전운이 감돕니다. 세계는 수렁에 빠지는 듯합니다.
좋은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좋은 제자가 되는 데에는 실패한 듯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수님보다 좀 더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사상가 김선욱의 말과 글이 아직도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생의 한 때에 교수님과 함께 발맞추어 걸었던 저희 제자들이 다 같이 짊어져야 할 책무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교수님을 떠올리며 읽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 송사를 마치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2025년 6월 23일
제자 최재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