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잘게 썰어야 한다
인간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철학의 이비총을 쌓으려면
그는 먼저 도구를 골라야 했다
윤리는 너무 둔했다
도덕은 쥘 손잡이가 없었다
언어가 좋겠다 아니야 그보다는 좀 더
좆같네
그때 수(數)가 보였다
그는 수를 낚아채고
숫돌에 갈았다
수에서는 불꽃이 튀고
마침내 '0=00' 따위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
철학자는 퍼렇게 날선 수를 들고 뛰어 나갔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마구 휘둘렀다
사람들은 아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쑤시고 조진 인체의 조각들은 이제
액체처럼 쏟아지고 옷에 스며들었다
이제 쌓기만 하면 된다
철학자는 액화된 인체, 이제부터 이걸 액체라고 하자,
를 한아름 쓸어모아 집으로 갔다
액체는 아무리 쌓아 올려도 자꾸만 흘러내렸다
더 들이부어야 하나?
수에 묻은 액체를 대충 닦고 또 나가 수를 휘둘렀다
사람들은 아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개중에는 비명을 지르던 중에 울대를 잘려 아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철학자는 이틀 밤낮을 내리친 것 같다 분노를 담아서 끓어오르는 피를 담아서
이제 액체는 기화된 인체가, 알다시피 기체가, 됐다 좆 같은 수도 이제는 흐물거렸다 이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숫돌이 거울처럼 맑았다
철학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