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소감(이자 경고)

결혼을 하니 남의 집 침대 사정이 자연스럽게 공론화된다. 나는 이게 참 싫다.

1. 무거운 걸 들으래서 몸을 굽혔더니 ‘신혼인데 허리 아껴야지’라며 웃는다. 이미 관용적인 표현인 것 안다. 근데 싫다. 분위기 깨고 싶지 않아 나도 웃어 넘기긴 하는데, 기분 더럽다. 나를 성적 농담 대상으로 삼는 건 얼마든 오케이. 그런데 결혼하니 자연히 내 아내가 엮인다. 농담 대상으로 내 아내까지 허락한 적은 없다.

2. 밤 열시 반에 회사에서 온 전화를 안 받았더니 ‘일하느라 바빴냐’며 웃는다. 물론 희롱하는 표현은 없고 맥락만 있다. 역시 기분 더럽다. 대답 안 하고 넘어갔는데, 자꾸 생각난다. 이거… 한번 엎어버려?

3. 친하든 친하지 않든 신혼이라 하면 ‘애는 언제쯤 계획하냐’ 묻는다. 그래, 뭐,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 하니 이건 어찌저찌 이해한다. 근데 ‘콘돔은 쓰냐’니. 어쩌라고?…시바… 쓰면서도 열받네.

4. 첫날밤 이야기는 그냥 소설이나 영화 봐라.

5. 이건 아내 이야기인데, 감기에 걸렸다고 하니 누가 ‘신혼에 감기 걸리면 임신이라던데’라고 했다 한다. 아내는 가볍게 무시.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무시가 안 된다… 흑흑

고급 유머는 단어가 아니라 맥락으로 웃긴다. (유머라는 어원 자체가 물처럼 딱 잘리지 않는 유체를 뜻하기도 하고) 성희롱도 마찬가지다. 더럽게 열받는데 따지기가 애매하다. 그러니 ‘성적 농담’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겠지.

그런데 이제는 알려야겠다. 나를 희롱하면 내 아내도 희롱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이야기 말고도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신혼이라 하니 내게 쏟아지는 성(교)적 관심을 보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밤일 생각만 하면서 사는 건가 싶다. 물론 내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인간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공론화해야 하지 않나 싶다. 성희롱의 잠재 피해자를 젊은 여성에만 국한하는 것도 상상력의 빈곤이요, 성차별이다.

가정사는 비밀을 전제로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옷 아래 맨살과 같다. 나는 내 몸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남들 보라고 차려입은 옷만 깔끔히 보여주고, 귀가해 아내 앞에서는 편안한 잠옷으로 홀홀 갈아입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결혼 소식도 주절주절 알리지 않았다. (당연히, 자랑스레 결혼 소식을 알린 분들을 비난하는 건 결코 아님. 얼굴도 맨살이다.)

그런 내게 굳이 성적 농담을 꺼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웃으면서 내 옷을 벗겨 맨살을 드러내는 것 같은 수치심을 느낀다. 물론 나는 닳고 닳아서 부끄럽지도 속상하지도 않지만, 내 가족이 결부되니 이야기가 다르다. 인격은 옷이요, 화장이요, 가면이다. 나는 그걸 벗기가 참 싫다. 그냥 서로 적당한 선 지키면서 가면 잘 쓰고 살면 참 좋을 텐데, 싶다.

추신. 

물론 내가 몇몇 사례만 들어서 그렇지, 대부분은 기분 좋게 축하해 주신다. 방금 전 나눈 대화 일부를 옮긴다.

‘신혼이라 좋으시냐’기에 ‘삶이 완성된 것 같다’고 대답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혹시 아이 계획이 있다면 자식을 낳아 보라, 아이를 낳으면 그 느낌이 더 확실히 느껴질 거다.“

참 기분 좋은 대화였다. 글로 쓴 게 전부라 믿고 세상 사람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도 선 넘는 거다. 나는 아직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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