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덥다고 에어컨 희망온도 18도로 설정하는 사람을 나는 깊이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사물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재에 매몰돼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분별력이 없다.
더위를 빨리 식히려면 희망온도가 아니라 풍량을 조절해야 한다. 희망온도는 특정 온도를 기준으로 온도를 낮추는 강도로 작동할지/유지할 정도로만 작동할지를 결정한다. 희망온도까지 얼마나 빨리/느리게 도달할지를 조절하는 건 풍량이다. 에어컨이 허용하는 최저 온도로 설정해두면, 이미 땀이 식은 뒤에도 에어컨은 열심히 돌아갈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실내온도는 에어컨이 허용하는 최대 풍량까지만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에어컨은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희망온도를 왜 18도로 설정하는 걸까? 글쎄. 첫째는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야 하고, 둘째는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희망온도 18도는 다분히 종교적이다. 비가 안 오니 뭐든 해보겠다는 기우제와 같다. 지금 더우니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는 거다.
생물은 행운과 불운을 자기 행동과 결부시키며 살아간다. 원숭이도 도박사의 오류를 범한다는 연구가 몇 년 전 발표됐다. 황색망사점균의 길찾기 능력은 생물의 존재 의의 자체가 운과 능력의 연결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살면서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 운은 운이고, 능력은 능력이다. 운은 능력 밖의 일이어서 운이다. 우리는 이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인간의 한계이자 신이 아닌 존재의 한계다. 오직 신만이 뜻대로 모든 걸 이룬다.
분별력은 한계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순간에만 집착한다. 현재는 미래가 있어 한계에 봉착한다. 미래도 미래의 미래로 인해 한계지워질 것이다. 사물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한계를 잘 알게 된다. 도끼로는 찌를 수 없구나, 베기만 할 수 있구나, 찌르기에 적합한 도구는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만 분별력이 허락된다. 분별력은 다른 말로 분수를 아는 것이다. 에어컨의 희망온도를 설정하는 기능과 풍량을 설정하는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것, 에어컨이 만능요술온도지팡이는 아니라는 것.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
에어컨뿐일까? 다른 많은 사안에도 이런 기우제는 허다하다. 손님이 왕이라는 것. 대학에 가면 인생이 풀리리라는 것. 이 후보를 뽑으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겠다는 것.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