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맑음
결혼을 준비할 때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지원과 결혼반지를 맞췄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반지의 의미를 지원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뼈가 남는다고, 뼈만큼 오래 남는 건 바로 이 반지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반지에 유언을 새겨야 한다고. 지원과 나는 각자의 반지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기로 했다. 먼 훗날 21세기 대한민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땅을 파서 내 뼈를 발견하면, 지원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뼈에 새겨 잊기 어렵다(刻骨難忘)는 말은 우리의 결혼반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지원을 만나 참 고마웠다고, 다시 태어나도 지원을 만나고 싶다고 나는 적을 것이다. 그 기록이 오래 남도록, 우리는 가장 오래간다는 백금과 금으로 반지를 맞췄다.
고양이 갓또를 만날 때도 그랬다. 콩알만한 고양이가 우리에게 와 얼굴을 부비고 어깨에 올라탈 때, 나는 네 죽음까지 함께하겠노라 결심했다. 지원을 처음 만날 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지원을 볼 때마다 죽음이 떠오른다. 죽음은 우리의 사랑을 완성하면서 동시에 그 누구도 끝낼 수 없는 세계로 보낼 것이다. 나는 지원과 함께 죽고 싶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결혼반지를 맞추고 함께 집에 돌아와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생고기를 샀다가 다 못 먹고 얼려두었다. 지난주에 구워 먹으려 해동했다가 못 먹고 다시 얼렸다. 냉동과 해동을 반복한 고기는 쉽게 상한다. 걱정하며 향신료를 잔뜩 부었다. 그래도 로즈마리와 타임, 올리브유, 파와 마늘, 통후추로도 잡히지 않는 잡내가 있다.
고기든 마음이든 한 번 얼어붙으면 돌이키기 힘들다. 나는 고기를 구우며 지원의 따뜻한 마음을 평생 유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몸이 피로해 지원에게 하소연했다. “너무 피곤해서 울고 싶어.” 내 몸은 점점 연로해진다. 나는 오래된 생고기처럼 조금씩 부패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악취를 지원에게 풍겨서는 안 된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미생물들이 나를 뜯어먹어, 발효됐으면 좋겠다. 지원이 그 냄새를 구수하다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독서모임을 끝냈다. 책 쓰고 다시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