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흐리고 가끔 비 그런 날이 있다. 몸이 축 처지는 날. 머리가 잘 안 굴러가는 날. 음식만 먹으면 옷에 흘리는 날. 무얼 해도 잘 안 되는 날. 그날이 오늘이었다.
[월:] 2023 8월
2023. 8. 27. 요약생활 121
일요일, 맑음 결혼을 준비할 때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지원과 결혼반지를 맞췄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반지의 의미를 지원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뼈가 남는다고, 뼈만큼 오래 남는 건 바로 이 반지일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반지에 유언을 새겨야 한다고. 지원과 나는 각자의 반지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기로 했다. 먼 훗날 21세기 대한민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땅을 파서 내 뼈를 발견하면,…
[독서노트]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7.Aristotle. ed. R. Kassel, Aristotle's Ars Poetica. Oxford, Clarendon Press. 1966. 2023년 8월 14일부터 8월 27일까지 읽다. 1. 모방(μίμησις)제1장 모방의 차이점 1 - 수단제2장 모방의 차이점 2 - 대상제3장 모방의 차이점 3 - 양식(서술, 연기, 드라마, 코미디)제4장 시의 원인과 비극의 역사제5장 희극과 서사시2. 비극(τραγῳδία)제6장 비극의 본질과 구성 요소제7장 이야기의…
페미니즘에 관한 단상과 대화
영화 <오펜하이머>에 여성 인물이 적다는 비판이 돈다. 지능형 안티 페미니스트 같다. 그들은 모든 역할에 성별을 결부시킨다. 성별을 이유로 역량을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과장해서도 안 된다. 역할은 역량으로 결정해야 한다. 전통 사회는 역량이 아니라 성별로 역할을 결정하곤 했다. 분명 문제다. 그러므로 자연적 성별과 사회적 성역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아기를 낳고 젖먹이는 일…
단상들 2023. 8. 16.
(테세우스의 배 문제에 따라 과거의 일본제국과 현재 일본이 다르니 윤석열의 광복절 연설이 타당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사유와 행동] [오전 8:13] 저는 뭐 나쁘지 않은거같은데언제까지 반일감정 팔아먹을런지 ㅉㅉ네 저는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과거니까 잊어야죠 [사유와 행동] [오전 8:16] 광복절이라서 더 의미있을수도 있다고 봅니다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의미를 담을수도있는거죠반일감정이 아니라면 문제될게 없다고 봅니다 [사유와 행동] [오전 8:46] 태세우스배의…
노래
말이 되니분노를 노래하라니누군가 죽고 빼앗기고범죄자는 의기양양 살아가는데눈물이 흐르고 화가 나는데노래하라니아름답게 이야기하라니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말이 안 되지피는 피로 갚아야지싸우고 쪼개고 다그쳐야지나는 그날 이미 죽었으니까노래는 생명의 바람이니까마치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이름도 없이
양파
내 얼굴에서젊음 한 조각 떼어내면잘라낸 흔적이 이마에가로로 한 줄우리 사이에서먹한 마음 서걱서걱벽 쌓는 소리가르는 소리나는 밥을 짓다가도마에 토막난 양파들이내 얼굴 같아서 우리 같아서눈물을 흘렸다 아주 조금
글 잘쓰는 법
“(일반적 청중의 주의를 환기하는) 그러한 도입부는 무엇보다도 나쁜 쪽을 대변하거나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즐겨 사용한다. 그들에게는 사건 자체보다 다른 것을 강조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서론을 늘어놓으며 에둘러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3권 14장) 뼈 맞았다. 여태 내가 글 쓰던 방식. ‘이게 왜 중요하고, 어떻고, 나는 어떻게 이걸 발견했고,…
가족돌봄청년 – 외면 받는 청년들
간병은 누구에게나 고역이지만, 청년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영 케어러(young carer)'라 불리는 가족돌봄청년 이야기다. 한 사람이 아프면 온 가족이 흔들린다. 삶은 그 자체로 노동이어서,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을 치우듯 자고 나면 초기화된다. 성취가 쌓여야 앞으로 나아가는데, 쌓이는 건 내일의 일뿐이다. 주경야독이라도 해야 미래가 있다. 그러나 청년의 삶에 간병이 끼어들면 일이든 공부든 하나는 포기해야…
황혼 자살 –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
자살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젊은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틀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목숨을 끊는 연령대는 80세 이상이다. 2021년 기준 80세 이상 10만 명당 61.3명이 죽음을 선택했다. 전체 연령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명이었다. 80세 이상 노인들이 세 배 이상 빈번하게 세상을 등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유독 이때만 그런가 해서 찾아봤더니, 20년 넘게 8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