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4. 요약생활 115

토요일, 맑음

이사했다. 복층 원룸 월세 빌라에서 대단지 투룸 전세 아파트로 간다. 이제 공식적으로(?) 지원과 함께 산다.

하루종일 짐을 싸고 옮겼다. 군 시절 전투준비태세 훈련 때나 쓰던 커다란 PP박스에 옮길 짐을 넣었다. 전에 살던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이어서 등에 짐을 지고 수없이 오르내렸다.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다행히 손수레를 쓸 수 있었다. 옛집과 새집을 오가며 상차와 하차를 반복했다.

지원은 일을 마치고 이사를 도왔다. 옮긴 짐을 풀고 제자리에 두었다. 한창 잘 시간에 소란을 일으켜 혼란스러울 고양이 갓또를 돌보기도 했다. 우리 짐이 찰수록 휑하던 아파트가 우리 집으로 변모했다.

옛집에서 마지막 짐을 뺄 때에는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나는 이 집에서 석사 공부를 했고 의회 일을 시작했고 좋은 곳으로 이직했다. 내 20대 마지막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고마웠다고, 다음 사람도 잘 부탁한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새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아직 채 풀지 못한 PP박스들 틈에서 전투식량을 먹는 듯했지만, 조촐하게 술잔을 나눴다. 나누면서 각자의 삶이 서로를 만나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털어놓기도 했다.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구원자라고 말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천국 안에서 산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밖으로 간다. 예쁘게 꾸미고 만나 손을 잡고 걷는다. 머무를 곳이 없어 밖으로 밖으로만 걷는다. 각자의 미래를 서로에게 완전히 걸기에는 아직 각자의 마음속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밖으로 간다.

반면 사랑의 첫 국면을 완성한 사람들은 안에 머무른다. 때로는 추한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할 테지만 부러 감출 필요가 없다. 그것 역시 서로의 모습이고, 이미 서로에게 삶을 의탁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믿음은 언제나 앎을 앞서기 때문이다. 완성된 사랑은 꾸밈 없는 사랑, 추궁하지 않는 사랑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서로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사랑을 완성한 것이다. 사랑은 무한해서 완성되더라도 언제나 새롭게 시작된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머물 집을 정하고 그 안에 산다.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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