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흐림
나는 국어선생님들을 사랑한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고 보니 모두 국어선생님이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어제는 중학 시절에 만난 국어선생님과 저녁을 먹었다. 그저께는 국어선생님을 하던 고교 친구와 길게 통화했다. 이 두 국어선생님은 정말 선생님이어서 언제 어디서든 매번 배운다. 집앞 꼼장어 집에서 만나면 그곳이 교실이 되고, 실없는 안부전화를 하면 그야말로 원격교육이 된다. 그래서 한 선생님을 만나면 다른 하나가 매번 떠오른다. 둘 모르게 한 공간에 불러 놓고 나만 쏙 빠지면 어떨까, 혼자 킬킬댈 때가 많다. 둘이 마주치면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몰라. 말투와 몸짓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사라진다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이렇게나 즐겁다.
내가 사랑하는 국어선생님들은 모두 경계에 서있다. 경계 이편과 저편에 발을 딛은 사람들. 내 좁은 세계 밖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내가 범접하지 못할 만큼 끈질긴 삶을 살면서도 나와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사람들. 내가 어쭙잖게 아는 것들을 실컷 떠들게 하고서는 말미에 도리어 내가 끄덕이며 배우게 되는 사람들. 이 국어선생님들은 선생님이 어떤 존재여야 하나,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쉬지 않고 고민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내가 사랑하는 행위로 삶을 채워가는 사람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국평오’라는 말을 아시는지? ‘대한민국 국민 평균은 수능 5등급’이라는 멸시와 조소가 가득한 인터넷 은어다. 그런데 어제 국어선생님과 이야기하며 뜬금없이 국평오가 떠올랐다. 멸시와 조소가 아니라 위로와 안심으로.
삶에는 수많은 시험이 있다. 나는 최근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시험을 치렀다.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나는 말 그대로 전전긍긍했다. 잘 지내던 지원과 싸움도 여러 번 했다. 요즘 이런 것들이 고민이라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패가 보통이야.” 그때 국평오라는 낱말이 전등 켜지듯이 툭, 떠올랐다. 맞다, 실패가 보통이지. 함께 살려고 대출 신청했지, 대출심사 통과하려고 함께 산 게 아닌데. 인생에 시험이 수능뿐만 아니듯이 앞으로 우리 가정에 수많은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매번 실수 없이 하겠다고 살얼음판 걷듯 하면 깨지는 건 우리 가정이고 지원과 나의 사랑이겠구나.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걸어온 실패의 순간들을 나와 함께 복기했다. 함께 복기하면서 나는 괜찮다, 괜찮다 하는 국평오가 떠올랐다. 최하 점수를 받은 아이에게도 ‘할 수 있다’, 그보다 좀 더 잘하면 ‘좋다’ 하던 수우미양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다른 누구와 비교할 게 아니라 어제의 나만큼만 하면 된다. 많이도 말고 한 발짝씩만 더, 꾸준히. 그게 아름다움이지.
나도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다. 언젠가 애들과 오랫동안 이름난 책을 읽는 학원을 차리겠다고 하니 선생님은 웃으셨다. 잘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내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다. 내가 사랑했고/하고/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