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맑고 황사
어제는 일을 몰아쳐서 끝냈다. 국회의 국정감사에 비견되는 지방의회의 구정질문를 앞두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의원들로부터 지시를 받아 5분 자유발언 원고 1개, 구두 구정질문 원고 3개를 모두 끝냈다.
책도 못 보고 글도 못 써 아쉬웠다. 뭐, 업무로 쓴 글도 글로 친다면야 많이 쓰기는 했다만. 여러 의원들이 잘 썼다고 했다. 으레 하는 칭찬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국회에서 배운 글쓰기의 핵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좋은 자료에서 나온다. 좋은 자료를 많이 조사하면 좋은 글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논리와 감정인데, 논리는 자료 사이의 연결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들을 적당한 관계로 엮어내야 한다. 자료가 재료라면, 논리는 형상이다. 논리가 충분치 않으면 글은 모래로 빚은 그릇처럼 깨져버린다. 자료들을 잘 엮은 글은 마치 도자기처럼 좀처럼 깨지지도, 흠집이 나지도 않는다. 물론 그동안 뜨거운 불에 굽듯이 스스로 수집한 자료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기물음과 비판, 극복의 시간을 겪어야 하지만 말이다.
한편, 감정은 조미료와 같다. 꼭 필요한데, 과하면 역겹다.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마땅히 분노해야 할 글에 기계적 중립이랍시고 감정을 절제하면 글이 심심해진다. 감정이 부족하면 사람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ChatGPT의 답변에서 기대할 수 없는 건 분노의 감정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과하면 읽을 가치가 사라진다. 감정이 과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자료와 감정의 관계다. 자료가 부족한데 억지로 특정한 감정을 도출하면 역겨운 글이 된다. 제대로 공부 안 하고 쓴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자료는 잘 모았는데 어긋난 감정을 도출하는 글은 서투르게 보인다. 마르크스의 이름을 빌려 자본주의를 비난하려는 글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이번 작업이 유독 자랑스러운 이유는, ‘조금씩 천천히’라는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했는데, 꽤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네 편의 글을 쓰는 동안 각각 일주일 정도 자료조사를 했다. 네 가지 글을 병렬적으로 진행해 조금씩 써내려갔다. 쓰다가 부족한 자료는 바로 전화하거나 공문을 보내 요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음 글로 넘어갔다. 국회에서는 부족한 시간에 한 가지 글만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곳에서는 충분한 시간에 여러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직구만 던지던 투수가 변화구를 익힌 기분이 이런 걸까 싶다.
그래서 오랜만에 함께 일했던 보좌관님들께 전화를 걸어 감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