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스 없는 아름다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다.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아우른다.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만 의미하게 된 단초는 로마 사람들의 베누스(Venus, 비너스) 숭배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인은 크리스트교가 부흥하기 전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 다신교 문명을 유지했다. 그중에서 핵심은 올륌포스 신들에 대응되는 유피테르(Jupiter, Ζεύς), 유노(Juno, Ἥρα), 미네르바(Minerva, Ἀθήνα)였다. 그러나 각각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와 다르게 별도의 탄생신화를 갖고 있었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동생 헤라를 구했다고 전해지지만,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와 유노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식이다. 그러나 베누스의 탄생 신화는 따로 알려지지 않았고,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 신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베누스 여신은 경작된 토지(terra cultura)의 여신으로 숭배(cult)되고 사랑과 여성적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사용됐다. 그러나 라틴 민족이 처음부터 베누스를 숭배했던 것은 아니다. 베누스가 아프로디테와 엮인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Αἰνείας)와 자신의 양아버지 아우구스투스의 혈통을 엮으려 했던 정략적 맥락이 숨어있다.
아이네이아스는 아프로디테가 트로이인 앙키세스(Ἀγχίσης)와 낳은 아들이다. 앙키세스는 가장 가까운(ἄγχιστος) 자를 의미한다. 그는 무엇에 가장 가까운 인간인가? 신이다. 신의 사랑을 받아 자식까지 얻었으므로,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 된 것이다. 이 가까움은 이카로스(Ἴκαρος)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라는 도구로 얻은 가까움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본 오만(ὕβρις)과는 정반대로, 신이 인간을 선택했으므로 앙키세스에게는 자부심(εὐχωλὴ)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자부심으로 인해 앙키세스는 다른 인간에게 아프로디테와 몸을 섞었음을 자랑했다. 그 벌로 앙키세스는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평생 왼발을 절었다(χωλός). 만일 앙키세스가 아프로디테와의 동침을 숨겼다면 앙키세스는 오만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신들에게 신과 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앙키세스를 신이 아닌 자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말(αἰνεῖν)이었다. 그렇다면 아프로디테는 아이네이아스 신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러나 이런 배경은 카이사르에 이르러 퇴색됐다.
로마의 베누스 숭배는 공화정의 종말과 동시에 제국의 시작을 의미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Pompeius)와의 내전을 치르며 ‘승리자 베누스(Venus Victrix)’라는 군호로 전투에 임했다.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를 앞두고 폼페이우스에 승리하면 베누스 신전을 공헌하겠다고 서원했고, 실제로 카이사르가 승리해 베누스 신전을 지었다. 베누스 신전에는 ‘어머니 베누스의 신전(Templum Veneris Genetricis)’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베누스는 로마의 대표적인 여신 격으로 숭배됐다. 베누스는 율리우스 가문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로마에서 만들어진 신이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이 아프로디테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로마인의 베누스 숭배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아프로디테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품(ἀφρός)에서 난 자다. 아프로디테의 탄생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Χρόνος)의 패륜에서 비롯된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Οὐρανός)가 자식의 반역을 두려워하며 아내인 땅의 신 가이아(Γαία)의 자식을 지옥(Τάρταρος)에 가두었다. 이에 분노한 가이아가 낫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아버지를 해칠 것을 권했고, 그때 나선 자식이 크로노스였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를 향해 가이아의 낫을 휘둘러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랐다. 잘린 성기는 바다에 떨어져 키프로스섬 앞에서 거품을 냈다. 바로 그 거품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
아프로디테는 어머니 없이 우라노스에게서 난 딸로 설명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우스와 디오네(Διώνη)의 딸로 설명되기도 한다. 디오네는 그 이름에서부터 제우스(Διός)의 여인을 의미한다. 디오네는 트로이 전쟁에서 인간에게 상처입은 아프로디테를 위로한다. 아프로디테에게 상처를 입힌 인간은 아카이오이 영웅 디오메데스(Διομήδης)다. 디오네는 아프로디테를 위로하면서 인간이 신과 싸우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디오메데스의 이름은 신(Διός)이 계획한다(μήδεσθαι)는 뜻이다. 디오메데스는 아테나의 명령을 받고 전투에 임했다. 디오메데스는 아프로디테에 맞선 아테나의 도구로 쓰였다.
플라톤에게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신 에로스(Ἔρος)와 동일시된다. 플라톤은, 우라노스의 에로스를 주장한 헤시오도스와 제우스-디오네의 에로스를 주장한 호메로스의 해석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플라톤은 이 충돌을 사랑의 두 층위로 설명해 해소하려 한다. 물론 사랑은 양자택일적 현상이 아니라 연속체와 같은 중간자적 현상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신 또는 인간의 현상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 설명에 따르면 우라노스의 아프로디테는 몸이 결부되지 않은 순수하고 우월한 사랑을, 제우스와 디오네의 아프로디테는 몸이 결부된 저속한 사랑을 의미한다.
아프로디테 탄생 신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핵심은 심연이다. 우라노스가 자녀들을 가둔 지옥은 심연(abyss, abyssus, ἄβυσσος), 즉 깊이(βυθός)가 없는(ἀ-) 곳을 의미한다. 깊지 않아서 심연이 아니라, 바닥이 없어서 심연이다. 인간은 심연의 깊이를 알 수 없다. 심연은 신들의 공간인 하늘과 인간의 공간인 땅이 만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시간이 하늘의 성기를 자른 그 순간부터 하늘은 땅과 교합하지 못하게 됐고, 신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은 철저히 분리됐다. 신과 인간 사이에 시간이라는 경계(οὖρος)가 생긴 것이다.
신에게는 시간이 닿지 않아 언제나 현재 즉 영원(eternity)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경계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심연이다. 심연은 인간이 신적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사유(thinking)의 공간이다. 사유는 마치 거품처럼 연장(extension)이 없는 무엇이다. 인간이 가진 사유의 능력은 가이아의 낫처럼 하늘과 땅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신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로 인해 그리스적 아름다움에는 보이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도 함께 담겨 있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프로디테 칼레(Ἀφροδίτη καλή)에는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반면, 로마제국에서 아름다움은 곧 베누스다움이었다.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누스툼(venustum)에는 그리스어 칼로스가 놓안 맥락이 소거된다. 베누스는 욕망이나 갖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원시인도유럽어 벤(*wenhx-)에서 비롯됐다. 사냥과 추적을 의미하는 베나리(venari)는 베누스와 같은 뿌리를 갖는다. 아름다움은 마치 음식을 향한 배고픔과 같이 의지를 통해 쟁취해야 할 ‘이상적인’ 무언가로 해석됐다.
로마제국이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은 외면됐다.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스페키오수스(speciosus)에는 보이지 않는 형상(species)이 전제되어 있다. 베누스다움과는 정반대의 아름다움이었다.
대상으로서 아름다움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계속해서 유지됐다. 이런 관점은 보티첼리의 그림 베누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1483)에서도 볼 수 있다.

2022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금메달을 딴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말이다. “큰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우승했기 때문에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니까요. 늘 계속 연습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