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필 작가로 데뷔했다. 글은 7월 7일에 썼는데, 올라간 건 7월 17일이다. 맨 첫 문장에 헌법 제11조 제1항을 인용했는데, 때마침 제헌절에 게재됐다. 뿌듯하다.
원래 언론사 칼럼에 기고하면 글이 난도질 당해서 올라간다. 그런데 이번 글에는 사소한 통계 두어 문장만 추가됐다. 내 손으로 쓴 문장은 모두 살아남았다. 글쟁이는 이 맛으로 산다.
[初選이 대한민국 바꾼다] 소외된 이들에 법의 이름을 붙여주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일하고, 먹고, 쉬지만, 가끔씩 우리 눈에서 사라진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들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힌다. 곡기를 끊어도 언론은 고요하다. 파업을 해도 손해만 셈한다. 지하철에 몸을 던져도 연착에만 분노한다. 그들은 암수범죄만큼 어두운 곳에 산다. 이른바 '폐지 수거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법이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법률에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들을 규정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사업자도, 근로자도 아니다. 정부는 그들이 몇 명인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 법체계에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OECD에서 우리나라의 재활용 폐기물 수거율은 상위권에 속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약 6만6000명이 폐지를 줍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전체 노인의 0.9%, 일하는 노인의 2.9%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혹자는 폐지 수거인이 약 17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또 어떤 이는 그들이 도시 주거지역 폐지의 약 60%에 달하는 24만여 톤을 매년 수거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실태조사가 진행된다면 더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그들이 공무직 청소원이나 지자체 용역업체가 할 일을 대신함으로써 공공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폐지 수거인이 얻는 소득은 최저임금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기여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그들에게 '법대로 하자'는 건 폭력이 될 수 있다. '법대로' 그들을 지원하려 해도 그들이 누군지 몰라 난항을 겪는다. 우리 법체계에는 그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엄연히 자원순환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들이,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법대로' 그들을 방치하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은 법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법이 없으면 그들은 사라진다. 법을 만들어야 우리는 그들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들에게 근원적으로 필요한 것은 일회적 보상이 아니라 법적 인정이다. 이번에 대표발의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그들에게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우리 법체계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자원재생활동가들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개정안에는 폐지 등을 수거하는 노인에 대해 보조금 및 안전 장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빈곤 노인들이 생계유지 수단으로 폐지 등 재활용품 수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첫걸음에 불과하다. 자원순환산업의 구조 전반을 바꾸어야 한다. 자원재생활동가 이외에도 법률에 소외된 많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정치의 정신이라 본다. 법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충분히 인정해야 진정한 법치주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법복을 벗고 국민 앞에 섰다. 정치는 법 밖의 사람들을 법의 영역 안으로 초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사본을 교부하도록 한 법안도, 성범죄 재판 중의 2차 가해를 금지한 법안도 같은 맥락에서 대표발의했다. 법이 있어도 충분치 못해 법 밖에 내몰리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좋은 정치인을 평가하는 척도를 그 책무에 맞출 때 정치는 개혁된다. 정치인의 책무는 좋은 법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법체계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민생은 행사장에 나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법으로 보호할 때 챙길 수 있다. 사법개혁도 마찬가지다. 소수 기득권만 인정하는 법체계에서 더 많은 사람을 인정하는 법체계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자를 믿는다. 우리 법체계가 더 많은 국민을 인정한다면 사법에 대한 신뢰는 자연히 증대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민께서 판사 출신 이수진을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주셨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