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system)은 그리스어 쉬스떼마(σύστημα)에서 왔는데, 함께(쉰, σύν) 서있다(히스떼미, ἵστημι)는 말이 조합된 단어이다. 라틴어로 치면 콘시스토(cōnsistō)인데, 역시 함께(쿰, cum) 서있다(시스타레, sistāre)는 뜻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쉬스떼마는 콘스티투토(cōnstitūtō)와 더욱 가깝다. 콘시스토는 멈추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지만 콘스티투토는 설립하다 혹은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콘스티투토 역시 함께 세우다(스타투오, statuō)라는 의미로 형성됐다. 쉬스떼마는 집합체, 기계, 무리, 동맹을 의미한다. 단지 멈춘다는 의미로는 담기 어려운 무언가가 쉬스떼마에는 있다.
시스템은 물리학에서 ‘계’라는 의미를 가리킨다. 태양계도 솔라 시스템(solar system)이고, 잔에 따른 커피도 일종의 시스템이고, 보온병에 담긴 이름모를 액체도 시스템 중 하나다. 계는 내가 관찰하려고 하는 특정한 영역인데, 그 경계에서는 무언가 주고받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열린 계에서는 물질과 에너지가 자유롭게 넘나든다. 에너지는 주고받는데 물질을 주고받지 못하면 닫힌 계다.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으면 고립계이다. 그렇게 따지면 태양계는 혜성과 소행성이 넘나드니 열린 계다. 잔에 따른 커피는 식지만 밖으로 흐르지는 않으므로 닫힌 계다. 보온병에 뭔가 있다는데 그게 뭔지 한 번도 본 적 없다면 고립계다.
의학에서는 시스템이 영역보다 기능에 더 가깝게 쓰인다. 신경계, 심혈관계, 소화계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organ)들의 집합이다. 뇌나 심장, 창자와 같은 기관은 세포의 집합인데 그리스어 오르가논(ὄργανον)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르가논은 도구나 악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도구는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 그에 합당한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목적을 다하면 도구는 필요없어진다. 그러나 목적 역시 도구에 종속된다. 도구가 없으면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몸의 어떤 기관들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 장기들과 함께 서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위해 서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기가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장기는 어디까지나 나와 함께 서있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순전히 정신적이어서, 물리적으로는 어쨌거나 함께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발전된 게 공학에서의 시스템 아닐까 싶다. 공학에서 시스템은 부분과 전체를 전제한다. 전체는 부분들의 합이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부족하면 전체가 기능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의학에서나 공학에서나 기능의 의존관계를 가리킨다. 장기든 부품이든 그것들이 조합된 기관의 기능을 위해 존재하나 그 외양으로 보면 부분이 전체와 함께 서있다. 그러나 의학과 공학의 차이는 복제가능성이다. 장기는 따라 만들기 매우 어렵다. 부품은 금세 만들 수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품은 기계와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었다. 장기는 보존되지만 부품은 소모된다. 부품의 복제가능성이 소모가능성을 보장하고, 부품의 소모가능성이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인 기계를 만들어냈다. 부품을 지속적으로 교체함으로써 기계는 영속할 수 있다. 오히려 부품의 지속적인 교체만이 기계를 기계답게 한다. 기계는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있다. 강제력과 폭력의 관계가 그렇다.
그와 정반대의 의미는 헌법이다. 헌법(constitution)은 라틴어 콘스티투토에서 왔다. 헌법은 사람들의 뜻이 모여 만들어지지만 헌법과 사람들의 뜻은 결코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아니다. 부분이 없으면 전체도 없다는 기계적 의존관계가 아니라, 헌법과 인간의 관계는 연속된 해석으로만 매개된다. 사람들은 헌법을 해석함으로써 계속해서 헌법을 만든다. 헌법은 물질에 남긴 사람의 표식 그 이상이다. 해석을 멈추면 헌법도 죽는다. 헌법을 만들고 지키는 데 사람들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중요한 만큼 해석의 권한을 지닌 몇몇의 사람이 아주 중요하기도 하다. 헌법은 머물러있는 것이라기보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무언가이다. 그와 동시에 아주 정적이기도 하다. 권력과 권위의 관계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