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바뀌고, 논문도 통과하고, 졸업도 했고, 취업도 했다. 나는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고 있다.
1월 한 달은 악몽같았다. 가족에 비극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비극은 비단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비극이었다. 실은 그 가족의 비극이 더욱 근원적이므로 먼저 언급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나의 가족을 먼저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의 시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좁아지기 때문이다. 설 명절에 지원의 가족을 만나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는 확장됐다. 앞으로도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살기를 바란다.
2월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한 달이었다. 국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곧바로 대통령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연설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대중 앞에 서서 생각을 말하고 호응을 구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감사했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을 소명으로 생각해도 좋겠다고 여긴 계기가 됐다. 더불어, 철학 공부라는 경험이 앞으로 도움은 되겠지만, 철학을 공부하던 자세로 임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3월은 패배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온 시간이었다.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가 패배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후로 방향을 잃었다. 전화를 받고 일정만 조율하는 비서로 남을지, 의원님의 권한을 이용하여(혹은 의원님의 권한행사를 보조하여) 세상에 기여하는 보좌진으로 활동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여러가지 생각으로 새로운 법안을 만들거나 기존의 법을 고치고자 시도했지만, 나는 강한 추진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매번 생각이 바뀌니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게 당장 지난 금요일까지의 내 모습이다.
어떤 법을 만들 것인가? 내가 건드려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①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유자녀 가구 세제혜택 입법검토’, ② 배달원의 도로교통법 위반에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 ③ 소위 폐지수거노인으로 알려진 자원재생활동가를 법적 주체로 인정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법 개정’, ④ 중소기업 플랫폼에서 성행하는 장물거래를 제한하기 위한 ‘전자상거래법 개정’, ⑤ 소위 봐주기 수사로 불리는 직무유기 검사에 대한 봐주기 징계를 방지하기 위한 ‘검사징계법 개정’, ⑥ 그림자배심 등의 제도를 활성화하여 배심제도를 확대하기 위한 ‘국민참여재판법 개정’. 이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한 건 ③과 ④ 두 가지뿐이고, 다른 것들은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물렀다. 특히, ③은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과 전화통화를 나누어 내 문제의식이 현실적인지 반성할 수 있었다. ④는 구체적인 법률안을 작성하기 위해 경찰청에 자료를 요구해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느리다. 좀 더 빨리, 더 많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
토요일에는 헤겔의 『법철학(Elements of the Philosophy of Right)』을 모두 읽었다.
오늘은 지원의 아버님과 식사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습속에 젖어들면 죽는다. 시간의 흐름에 예민한 감각을 갖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