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여섯 시에 거리에서 연설을 했다.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피가 끓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이런 느낌은 정훈장교 시절 300명을 상대로 교육할 때에도 느껴본 적 없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소수의 사람만 만나 공적인 말하기 능력을 잃은 줄 알았다. 지난 1년 동안 공부에 전념하면서는 단지 스승님이나 선현과 일대일로만 대화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늘은 집중유세라는 행사가 개최된 날이다. 목 좋은 곳에 당원 위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지하는 후보를 뽑아주십사 연설하는 행사다. 그러면 대체로 행인이나 지역 상인과 같은 불특정 다수들이 걸음을 멈추고 함께 듣는다. 말 그대로 대중 연설이다.
이번 집중유세는 청년이 먼저 연설하고, 그 다음으로 시·구의원들이 연설하고,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이 연설하는 순서로 구성됐다. 연설이 예정된 청년은 나를 포함해 둘이었는데, 예기치 않게 첫 번째 순서로 나섰다. 원고를 준비하긴 했는데 숙지하지 못한 채였다. 유세차에 올라 보면대에 원고를 올려놨다. 그런데 손을 떼자마자 원고가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다시 줍기 뭣해서 그냥 말부터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 대통령 후보를 선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원고에 써놨던 말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머리가 하얘져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생각보다 말이 술술 나와서 나도 놀랐다. 유세문을 작성할 때 히틀러의 연설을 참고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동됐다면 모종의 탁월함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설 영상을 보면서 ‘사상은 쓰레기지만 연설 기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말의 음조, 속도, 음량을 조절해 서서히 청중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광경을 보자하니 나도 따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연설에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내봤다. 물론 내용은 그의 연설과 아주 달랐겠지만 말이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중간중간 호응을 해줬다. 시민들은 내가 한 단락을 끝내면 함성과 박수로 보답했다. 능숙한 연설가인 체하며 손바닥을 들어 진정시키기도 했다. (이때는 속으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마지막에는 즐겁게 함께 구호를 외치고 내려왔다.
이렇게 내 첫 연설이 끝났다. 연단에서 내려오니 여러 사람들이 칭찬과 격려를 건넸다. 좋은 비서의 조건에 연설 능력이 포함될까? 우선 초보 비서에게 연설을 맡긴 걸 보면 아예 무관하지는 않은 듯싶다. 앞으로 이 일을 하며 자주 마주할 상황이다. 좀 더 연마해보고 싶다. (분명히 밝히지만, 언제라도 내 생애 후보로 출마하는 일은 죽어도 안 할 거다. 나는 깜냥이 안 된다.)
P.S.
이번 집중유세의 한계를 지적해야겠다. 적절한 공간이 없어 유세차를 횡단보도 앞 도로 한켠에 세워두고 그곳에서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에 많은 불편을 야기했다. 이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 협소한 공간에 무리하게 행사를 추진한 집단의 이기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시민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만한 광장이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제기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는 아고라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로마의 광장은 아직도 남아있다. 민주주의 선진국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는 전통적으로 광장과 교회가 중심부에 있다. 광장이 없으면 사람이 모이지 못한다. 광장이 없는 이유는 모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빈틈없이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쓸모만 추구하면 정치는 고사한다. 인간성이 사라지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