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년 동안 학문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정말 밥먹고 책만 봤다. 읽고, 쓰고, 때로는 밥을 거르거나 잠도 자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음미하느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문과 인격의 도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다 보니 언제 어떤 성취를 이루어야겠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다. 학위논문을 언젠가 쓰게 될 것이라는 막연함만 있었지, 그런 거대한 구조물을 구축하기 위해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냥 공부하는 게 좋았다. 아직 한참 모자란 수준에서 논문을 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쓰기보다 읽었고, 읽기보다 찾았다. 수준 높은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수준 낮은 글이었다. 때맞춰 졸업하겠다는 욕심은 있어서 결국 여름방학부터 얼렁뚱땅 써내려갔다. 제출기한을 당연히 넘기고 최종 제출 1일 전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전체적으로 읽고 검토하거나 최종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얻지 못했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획이 없었으니 여유가 자연히 생길리 없다. 이런 현상은 내 삶 전반에 뿌리박혀 있으니 이쯤되면 성벽이라 보는 편이 맞겠다.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미래에 허둥지둥대는 삶. 다분히 실존주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갖추지 못한 건 작업정신이다. 작업은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시작과 끝이 있다.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이미 머릿속에 끝마무리된 본을 그려놓고 시작해야 한다. 작업하는 중에는 그 본에 맞게 작업물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적절한 도구를 선정해야 한다. 이런 정신습관을 작업정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작업정신을 갖춘 사람에게는 시간도 도구가 될 뿐이어서, 마치 레시피처럼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 요컨대 작업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사는 동안, 미래의 모습을 본으로 두고 현재의 모습을 그 본에 맞게 가다듬어 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삶 그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정신이 내게는 없다. 그런 삶의 태도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모습이 멋져 보이거나 위대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정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장인정신이 된다. 장인정신은 삶의 의미를 작업에서 찾고, 작업물을 가다듬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본과 작업물의 차이를 최소화하려는 정신이다. 중요한 점은 장인정신을 갖고 작업에 임하더라도 실패하는 작업물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작업물은 생각했던 본과 다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을 떠올릴 때에는 작업과정을 다소 생략하기 때문이다. 본을 떠올릴 때 모든 작업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작업은 시작되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릴 것이다. 과정을 대강 도약해 나아가야 적절한 본을 마주할 수 있다. 건물만큼 정확하고 세세한 청사진은 없는 법이다. 물론 경험이 아주 많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초보가 장인정신을 가지면 작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진을 빼고 만다. 나는 대체로 진을 빼는 초보처럼 살았다. 작업정신이 없어 시간을 자본처럼 축적하는 법을 모르면서도, 그 작업물의 수준은 아주 높았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선임에게 질책을 들었다. 왜 자꾸 책과 논문만 읽느냐는 것이었다. 책 쓸 게 아니면 시중에 떠도는 자료를 짜깁기하는 수준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듣자마자 기분이 상하는 듯 했으나, 맞는 말이어서 이내 수긍했다. 그리고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작업정신을 결여한 채 살아왔으나 현장에서 필요한 건 작업정신이다. 나는 지금 여행을 떠나온 게 아니라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내가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분께 대부분의 기준을 맞추어야 한다. 그의 말과 생각은 본이 되고, 나는 어느 정도 도구가 된다. (물론 내 개성을 잃을 정도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그의 본을 작업물로 모사할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밥벌이를 하는 동안에는 말이다. 만약 그가 원하는 작업물의 수준이 너무 높지 않다면, 더 많은 다른 작업물을 만들 수 있도록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고 싶다면 내 사업을 따로 열면 된다.
밥벌이의 현장은 또 하나의 세계다. 세계마다 통용되는 언어와 활동 양식이 다르다. 그걸 알아가는 것도 배움이고 성장이다. 어린 비서는 이렇게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