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란 무엇인가 (1)

조직문화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그런데 조직문화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조직문화가 소위 MZ세대를 위해 직급파괴, 파격적인 승진, 상사의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 보장, 풍성한 사내복지, 적게 일하고 많이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조치들의 총계에 불과하다는 듯한 논조가 많다. (당장 오늘 뜬 기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조직문화라는 말에 ‘문화’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조직문화를 언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화가 무엇인지, 그런 문화가 회사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사내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지 등등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채용 시장에서 상품이면서 동시에 고객이 되어버린 MZ세대를 잡기 위한 포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관심은 이태리타올을 처음 마주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낯선 이름을 붙이고 좋을 대로 쓰면 뭔가 세련되어 보이고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성공적인 매출이다. 마치 집집마다 이태리타올이 팔린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MZ세대를 말한다. 누구도 이태리타올로 옷을 해입지 않듯이, 누구도 MZ세대론에서 문화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전후세대(post-war generation)처럼, 포스트코로나세대를 제시해야 옳다. 세대 개념은 혈액형이나 MBTI처럼 개인의 고유한 차이를 퉁치라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러한 차이 너머에 놓인 불가피한 상황을 발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MZ세대 개념은 인간의 새로운 행위를 타자화하고 유형화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들’이 MZ세대 혹은 90년대생이라는 사실은 문해력이 부족하다더라, B급 코드를 좋아한다더라, 할말은 한다더라는 등의 카더라에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이런 논리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물론 그들이 원숙한 ‘우리’보다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는 약간의 우월감과 함께 ‘무조건 네, 네 하며 눈치보던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결론으로 거리를 둔다. 나아가 이런 결론은, 중소기업 인력난과 대기업 경쟁률 사이의 모순, 매년 경신되는 공무원 준비생의 숫자,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 퇴사를 곧잘 결심한다는 사실과 결합해 ‘그들은 유약해서 궂은 일을 피하고 요행을 바란다’는 일반화로 접어든다. 이런 일반화에 따른 반응은 ‘다소 불합리하더라도 강인한 몸과 마음으로 버티며 낭만을 즐기던 옛 시절이 좋았다’는 향수로 나타나는가 하면,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사회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이며, 이런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당신은 도태될 것’이라는 은근한 위기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의 조직문화 담론은 MZ세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위기감에 부랴부랴 회사의 분위기를 정비하려는 과정에서 형성된 듯하다. 하지만 MZ세대론은 근본적으로 기성세대를 향한 공포 마케팅이며, 허구이다. 정작 MZ세대라 지목된 사람들의 반응은 ‘네? 저요?’ 같은 당황스러움이거나 부러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문화 담론은 직급파괴나 복지제도와 같은 세련된 포장 정도에서 피상적으로 형성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조직문화인가?

문화는 의미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사는 데 중요한 것은 쓸모만이 아니다. 쓸모만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행위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미 있는 행위들이다. 전쟁과 경쟁의 광풍이 휩쓸던 시절에는 생존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쓸모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쓸모 없는 것은 도태되고 쓸모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는 정신이 사람들을 지배했다. 의미를 추구한답시고 생존과는 관계 없는 짓을 하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쓸모보다는 무의미를 더 견딜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꽤나 늘고 있다. 때로는 쓸모 없어 보이던 일에서 발견된 새로운 쓸모가 주목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 세상이 살 만해졌다는 낭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미 없는 조직은 사라질 것이라는 비보이기도 하다.

문제는 회사가 밥벌이를 위해 모인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회사는 생존의 공간이다. 쓸모 없는 직원은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공간에서 과연 의미가 나타날 수 있는가? 어쩌면 사내문화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직원들이 회사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단지 사람의 모양을 한 도구가 된다. 도구는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 도구는 필연적으로 사용자를 전제한다. 사용자만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도구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도구가 되어버린 직원의 유일한 목적은, 퇴근해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소비자가 되어 자유롭게 돈을 쓰는 것뿐이다. 이런 소박한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사 안에서 오래 생존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사권을 가진 사용자의 입장만을 고려해야 한다. 이로 인해 도구적인 직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또 다시 도구로 대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생각, 의견, 발견도 사용자의 입장과 다르다면 자발적으로 폐기된다.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다보면 조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미 없는 일로 자본과 시간, 신용을 소모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쓸모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작품을 만드는 데 축적된 시간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의미는, 어떤 이의 행위로 나타난 결과가 지속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의미 있는 일이 ‘나에게만 의미 있으면 된다’고 착각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면서 ‘야, 그것 참 의미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의미를 얻은 것이다. 만약 정말 내일 지구가 사라지는데 오늘 사과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냥 사과나무를 심은 거다. 그가 심은 사과나무는 다음날 사라질 것이며, 아무도 그걸 보고 의미 있다 말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을 누군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이 일이 회자되어 그 일을 한 나를 기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의미를 만든다. 물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알아주리라는 믿음도 의미를 만든다. 그런데 이때의 의미는 자존감에 국한되며, 행위의 결과가 금세 사라져버린다면 자존감도 함께 사라진다. 요컨대 회사 안에서 직원이 한 일의 결과가 계속 남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드러난다면, 직원은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무도 못 보는 의자 아래를 사포질하던 이상순의 태도에서 이효리는 자존감의 원천을 발견했다

회사원이 의미를 상실하는 대부분의 계기는, 누군가 자신이 해놓은 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장표질이나 통계 마사지는 그 자료를 준비한 사람의 마음 속에 현타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보기에 맞는 말보다 그가 보기에 맞는 말이 회사 내에서 진리가 될 때, 그런데 결국 내 말이 맞았을 때, 그럼에도 사과하거나 내 말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그의 맘에 드는 말을 하는 다른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 걸 볼 때, 직원은 의미를 잃는다. 회사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기존에 해왔던 괜찮은 것들도 싹 다 바꾼다면 오히려 개악이 되고, 그와중에 저 이상한 현상들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면 점입가경이다. 혁신은 마누라 빼고 다 바꿀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무얼 지속시키고 무얼 변화시킬지 분별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가 서구 문명의 원류로 떠받들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문명이 꽤나 대단했던 것도 있지만, 그 이후에 나타난 로마제국이 그들의 기록과 건축물을 기가 막히게 보존했기 때문이다. 문화는 변화가 아니라 지속에서 나타난다. 혁신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시작을 잘 유지해 새로운 질서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직원의 동의와 참여로 모든 일이 시작되고 지속된다면, 의미가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임파워먼트니 잡크래프팅이니 새로운 개념들이 난무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 ‘네 일이 네가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데 있다. 좀 더 나아가면, ‘네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을 회사도 중요하다고 여긴다’는 믿음을 줄 때, 혹은 ‘네가 해낸 일에 고객들, 다른 직원들, 보상의 권한을 지닌 의사결정권자들이 찬사를 보낼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면, 회사는 단지 쓸모와 생존만 중시하는 밥벌이의 공간에서 의미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문화가 형성되면 일정한 행동양식이 나타난다. 그러한 행동양식은 문화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이다. 문화는 직급을 간소화하고 영어 호칭을 사용한다고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복지 제도를 시행하거나 성격 좋은 사람이 리더 자리에 앉아 있다고 언제나 좋은 문화인 것은 아니다. 일하는 방식을 이러저러하게 규정한다고 문화가 정해지는 게 아니며, 평가 기준을 세련되고 정치하게 늘어놓는다고 문화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교육을 통해 직원 개인의 성장을 돕는다고 해서 곧바로 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교양, 오락, 체계, 공정, 성장과 동일시될 수 없다. 고상함과 즐거움, 일사불란함, 납득가능성, 거듭남은 문화가 형성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그런 흉내를 낸다고 없던 문화가 형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MZ세대론과 공명해 유머코드가 아니라 회사 자체를 B급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회성 결여를 급진적인 솔직함으로 포장하거나, 이름난 회사들의 제도를 고민이나 맥락없이 도입해보는 모습들이 대표적이다. 조직문화가 요즘 뭔가 핫하고, 쓸모 있어 보이는데, 정작 왜 주목받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 얕은 생각으로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문화는 직원을 인간으로, 회사를 세계로 만든다. 문화가 형성된 회사에서 입사는 탄생에, 퇴사는 사멸에 비견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우리의 죽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세대를 넘어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이 유지될 때에만 세계라는 개념이 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후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물려주고 싶어하며, 나아가 이 세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회사에서 하는 활동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이 형성된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구성원의 변동에도 바뀌지 않고 유지된다면, 직원들은 자신이 퇴사하거나 은퇴하게 되더라도 남길 무언가를 만들고자 할 것이며,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유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직원으로서의 삶이 실제 인간의 삶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인간은 단 한번 태어나고 죽지만, 직원은 여러 번 입사하고 퇴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이전 회사에서 만든 작품은 다음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포트폴리오가 된다. 예를 들면, A회사에서 현재의 내가 만든 성과를 그 회사에 남은 다른 동료들에게뿐만 아니라 B회사에 입사한 미래의 나에게 물려줄 수 있다. 이 점이 문화세계와 사내문화가 형성된 회사와의 유일한 차이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공간이 어디든 자연스레 문화가 형성된다. 의미는 새로운 의견과 그 의견에 대한 타인의 의견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문화라고 할 것이 없는 조직에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구성원들에게 반대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반대할 자유는 어떤 이의 의견과 그의 생존 사이에 거리를 둘 때 보장된다. 그러면 말이 끊어지지 않고, 구성원의 수만큼 많은 눈과 귀가 생긴다. 다음 조건은 구성원들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든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진다. 대체로 최악의 결과는 피할 것이고, 때때로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 조건은 앞선 두 조건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만 뽑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내보내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컬처핏은 그 사람의 기술이나 사적 호감이 아니라 판단력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승진도 결국에는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기업 내에서 찾는 판단이므로, 동일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문화에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다면, 좋은 문화는 직원들이 회사 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다스러운 문화이고, 나쁜 문화는 회사 일에 의견을 내지 않는 문화이다. 한 번 문화가 형성되면 직원들의 시간은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라 축적되는 시간으로 바뀐다. 구성원의 업적과 그에 대한 다른 구성원들의 반응이 켜켜이 쌓여 회사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에 따라 직원들이 생각하는 회사의 모습, 회사 밖 사람들이 생각하는 회사와 직원들 자신의 모습이 형성된다.

비전-미션-핵심 가치는 사실 앞선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까먹지 않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람직한 문화가 정착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거창하게 내건다고 문화가 나타난다는 법은 없다. 문화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다. 문화에 관한 기록은 회사 내부의 직원들과 새로 입사하려는 지원자들을 위한 이정표다. 그 기록의 목적은, 이 회사에서는 어떤 행위가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지 잊지 않기 위함이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조직문화는 MZ세대가 대두됨에 따라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고민이 밥벌이의 현장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고, 그에 따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지 사용자의 도구가 되어 소모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은 단지 MZ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기 때문이다.

3줄요약
1. 문화는 쓸모 있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로 형성된다.
2. 회사에서 일의 의미는 고객, 동료, 의사결정권자의 지지로 유지된다.
3. 의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구성원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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