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을 돌아보는 일을 지난 추석에 하고 그만두고 있었다. 이제 해도 바뀌고, 논문도 통과하고, 졸업만 앞두고 있으니 쓸 때도 됐다.
오늘은 지원과 여기 저기 쏘다녔다. 그런데 어디를 다녔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적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설거지. 설거지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해야 한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기를, 삶과 연관된 반복은 의미를 앗아간다던데,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집안일에 유일한 의미가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를 무의미의 순환 속에서 건져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너 대신 내가 죽겠다 뭐 이런 의미를 굳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희생한 시간을 허투루 쓴 걸 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집안일을 마치고 노닥거리는 아들을 봐도 치받는 티를 전혀 내지 않으셨다. 다시 한 번 느끼는 어머니 은혜…
내가 학군단 후보생을 하던 시절에 장학금으로 현금 300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경제관념이 없던 나는 어머니 빚 갚는 데 좀 보태시라고 모두 드렸다. 어머니는 꽁돈을 붙박이장 맞추는 데 쓰셨다. 못난 아들은 그게 못마땅해 두고두고 잔소리를 해댔다. 내게는 붙박이장 따위보다 채무상환이 더 중요하게 보였으니까. 그런데 어머니께 돈을 건넨 이상 그걸 어떻게 쓰는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이제는 그걸 알면서도 어머니께 다시 말씀드리기가 머쓱해 입을 닫는다.
내가 훗날 누구의 시간을 대신 살게 되더라도,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 수명의 일부를 그를 위해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고, 그는 원래 하려던 걸 할 뿐이다.
오전엔 푹 쉬고 오후에 지원의 할머니 병문안엘 갔다. 코로나로 대면할 수 없다 하여 물품만 전달해드리기로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병원에 가 할머니 간식을 전달해드렸다.
내일은 지원의 생일이다. 미역국을 해주려고 미역과 소고기를 샀다. 아침에 밥을 해 먹이고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갈 것이다. 요리를 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