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쁜 ‘짓’을 했다고 곧바로 나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앞으로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을 믿어주겠다는 마음, 사람을 사랑해서 옛날 일을 눈감아주는 마음이 용서다.
용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용서 덕분이다. 우리 부모님께서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셨으면, 고집세고 오만한 이 머리 검은 짐승은 진작에 내쫓겼을 거다. 모든 인간이 카인의 후손이다.
용서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용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자는 말이 아니다. 결과보다 의도를 중시하자는 말도 아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용서라기보다 위로이고, ‘의도는 좋았다’는 이해에 가깝다. 용서는 ‘그거 나쁜 짓이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 믿는다’는 말이다. 용서의 반대는 믿어주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너는 구제불능이야’라는 저주다.
꼭 사과를 해야만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과는 내 행위가 잘못됐음을 시인하는 말이고,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달라는 요청이다. 잘못한 놈이 용서보다 위로나 이해를 구하면, 사과가 아니라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그러니 사과를 해도 용서받지 못할 수 있다. 주도권은 사과하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있다.
근데 좀 더 생각해보면 진짜 주도권은 당사자가 아니라 구경꾼한테 있다. ‘네가 잘못했네!’ ‘하모!’ 하는 말들은 용서하는 이에게는 힘을, 잘못한 이에게는 당혹감을 준다. 구경꾼 없는 용서는 우스꽝스러워진다. 얻어맞은 사람이 용서하더라도 구경꾼들이 인정 안 해주면 뻘쭘해지는 거다.문제는 구경꾼들이 잘 모른다는 거다. 구경꾼들은 ‘싸움났대!’ 하는 소리에 그제야 몰려간다. 그래서 때려놓고 사과하지 않는 놈들은 자기편부터 만든다. 자기편을 구경꾼으로 위장시켜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만들거나 변명을 늘어놓아도 ‘사과한 거 맞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유일한 희망은 구경꾼이다. 구경꾼은 억울하지 않아서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구경꾼의 삶을 산다. 인간사 너무 복잡해서 때린 놈 맞은 놈 구분이 잘 안 가더라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일을 당했을 때 억울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