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주제가 조금 바뀔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약속을 왜 지켜야만 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설명을 시도했지만, 약속에 대한 설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무엇 때문에 사람은 약속을 지킨다”라는 설명(결국 “법의 이념은 무엇이다”라는 설명)은 “인간은 죽는다”라는 설명과 같은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에 대한 의견이나 이론은 진리에 대한 진술과 다르다. 인간이 죽는 현상은 실존적인 조건에 따른 문제이므로 필연적이나, 사람이 약속을 지킨다는 현상은 인간의 활동이자 그 활동으로 구성한 조건의 일부이므로 우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을 통한 모든 사실은 의견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의견은 사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의견은 서로 다른 사실들을 종합해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하고자 하며, 미래를 예측하고자 시도한다. 사실이 바뀌면 이론은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이 이익과 결부되면 오히려 사실을 이론에 맞게 바꾸고자 한다. 이론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실을 은폐한다. 법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주장한 학자가 한스 켈젠이다. 그러나 그의 순수법학은 법에 드리운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걷어낼 해답이 되는가? 인간사의 영역에서 논리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