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거 아냐? 개미는 다리가 떨어져나가도 피가 안 난대.”
“그래요?”
“사람은 팔다리가 잘리면 피가 나잖아. 그런데 그게 사실 혈관이 충분히 넓어서 피가 나는 거거든.”
사장님은 손에 든 이력서를 아무렇게나 두고 컵을 찾았다. 투명한 유리컵을 이력서 위에 얹고 물을 부었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한 손으로는 탁자 한켠에 치워둔 재떨이를 끌어다 피우던 담배를 얹었다. 그는 인상을 쓰고 연기를 뿜었다. 재떨이에 놓인 담배 끝에서 향처럼 가늘고 긴 연기가 올라왔다.
“이렇게 가득 부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넘치지 않잖아. 그치?”
물은 컵 안에 쏟아졌다. 물병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이력서에 떨어졌다. 수위가 한계에 다다르자 그는 원두커피를 내리듯이 조심스럽게 유량을 조절했다. 물줄기는 가늘게 투명한 유리병의 주둥이와 수면을 잇기 시작했다. 넘실대던 수면이 이내 잠잠해졌다. 컵은 조용히 물을 받아들였다. 컵 아래로 보이는 이력서 글씨는 물을 통과하면서 굴절했다. 증명사진이 절반만 확대되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게 표면장력이라는 현상인데,”
컵에 물이 가득 차올랐다. 물줄기는 더욱 가늘어져 뒤틀리기 시작했다. 쇠하는 기력을 어쩔줄 모르는 듯이 이리저리 몸부림치던 물줄기는 이내 끊어져 방울로 떨어졌다. 수면에 닿은 물방울이 부서지자 둥글게 부풀은 수면에 파문이 일었다.
“말하자면 누구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셀 수도 있다는 거야. 한계는 컵이 정한 거고, 물은 이렇게 뛰어넘고 있잖아? 컵이 물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는 컵이 정하는 게 아냐. ‘Just do it’이라는 거지, ‘nothing is impossible’이니까.”
나는 카페 로고가 새겨진 휴지를 찾아 손에 꼭 쥐어들었다. 부풀은 물에 주기적으로 동심원이 퍼졌다. 있는 대로 부푼 수면은 목탁 소리 같은 파문을 따라 춤추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도전정신은 자연의 섭리야. 극한에 다다른 것 같아? 더 이상 안 되겠어? 그래도 해. 괜찮아. 안 넘쳐. 그게 인생이야. 카페 아르바이트라는 게 대단치 않아 보여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해야 뭐라도 얻어 가는 게 있는 거야. 학벌 이런 거 뭐 아무 상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가짐이야, 마음가짐.”
“네.”
물은 이제 넘실거려 컵 모서리를 핥는 듯이 보였다. 이력서에 떨어진 물방울에 볼펜으로 쓴 글씨가 번졌다. 학력란에 ‘고졸’이라고 쓴 글씨는 이제 영 알아볼 수가 없게 됐다. 성벽처럼 물을 감싸던 컵은 이제 함락을 앞두고 있었다.
“개미는 그걸 아는 거지. 그래서 다리 한 짝 떨어져도 ‘I don’ care.’ 정말 그야말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거야. 왜냐? 떨어져 나간 틈으로 피가 흐르지 않거든, 표면장력 때문에. 과다출혈로 죽은 개미는 이 세상에 단 한 마리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러니까 불구가 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뭐 그런 말 아니겠냐. 너 이런 코딱지만한 카페 하나도 쉽게 되는 거 아니다. 치열하게 살아야 돼, 치열하게.”
사장님은 물병을 들어 물을 멈췄다.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고 물은 다행히 넘치지 않았다. 물방울이 그친 후에도 물은 한동안 몸서리쳤다.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다.
“오늘 한 말 명심하고, 내일부터 나와. 세 달은 수습이니까 많이는 못 주고.”
그는 탁자를 유심히 훑어보다가 기묘한 표정을 짓더니 주머니를 더듬었다. 알겠다는 듯이 뒷주머니를 찾으려 몸을 돌릴 때, 예기치 않게 그의 왼팔이 탁자를 쳤다.
물이 넘쳐서 내 이력이 흠뻑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