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2.-16. 요약생활 42, 43, 44, 45, 46

2021. 5. 12. 수. 더움

아침에 학과사무실에 출근해 복수에 관한 원고를 작성했다. 점심에는 분석철학 교수님과 점심 식사를 했다. 박사에 진학하지 않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끝내겠노라 말씀드렸다. “공부는 마약 같아서 끊을 때 아주 끊어내지 못하면 나중에 생계를 뒤로하고 박사하겠다고 다시 온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렇게 끊어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저녁에는 HK 연구소 교수님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중앙대 앞 맛있는 고깃집에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점심의 말씀과 유사하게, “공부는 [마약 같아서] 끊기가 매우 어렵고 혹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라”고 말씀해주셨다. 언제나 양쪽 다리를 걸친 채 살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죽게 될까, 하고 고민했다.

오늘 공부한 것: 복수와 폭력의 관계를 신화와 어원으로 알아봄.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존재를 알게 됨.


2021. 5. 13. 목. 여름처럼 더움

오전에 HK 연구실에서 한자를 공부했다. 다른 언어를 열심히 외우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얕게 쓰고 넘어가던 언어에서 깊은 의미를 찾게 되었다. 더군다나, 외우는 일은 잠들어 있던 뇌를 깨우는 일이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사색하는 능력을 찾게 됐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들었다. 노사광의 『중국철학사』에 병기된 한자는 이제 한 쪽당 한두 개만 찾아보면 될 정도로, 한문 독해력이 늘었다. 발췌된 원문들은 3/4 정도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해독에 빼앗기는 정신이 온전히 이해에 쓰이니, 이해력과 사고력이 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성의 근원은 암송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지원의 공방에 들렀다. 스승의 날 선물을 만들었다. 작은 카드지갑이고 급하게 만들어 다소 초라했지만, 지원과 나의 정성이 들어간 작품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와 지원을 기억할 것이고, 어쩌면 나의 존재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오늘 공부한 것: 한자 기출문제 2개 풀어봄.


2021. 5. 14. 금. 더움

저녁에 예정되었던 ‘복수’ 방송이 취소됐다. 나는 아렌트의 의견 없이 신화와 어원적 측면에서 복수 개념을 들춰보기만 했다. 차라리 방송이 연기되는 편이 다행이었다. 복수의 모티프는 아주 먼 과거부터 계속된 것일 텐데, 나는 고작 아이스퀼로스를 발견하고 들떴다. 부끄러웠다. 태국 형은 복수를 실존철학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나는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해보고자 시도한다. 세계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 도덕과 법의 관계가 꼭 들어가야 한다.

점심에는 교수님께 선물을 드렸다. 아주 기뻐하셨다. 방학때 2학기 수업을 미리 진행할 것이라고 하셨다. 새로 박사 학위에 들어오는 서형 누나와 영민 선생님 이렇게 셋이 함께 아렌트를 읽게 될 것이다. 방학에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야 한다. 바쁜 와중에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교수님께 감사했다.

한자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새벽 2시 30분까지 공부했다. 읽는 한자 1817자 외운 것을 바탕으로 쓰는 한자 1000자를 연습했다. 어머니께서 늦게까지 도와주셨다. 같이 공부해 즐거웠다.

오늘 공부한 것: 한자 쓰기 1000자


2021. 5. 15. 토. 비

아침 일찍 일어나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을 읽었다. 하이데거의 시간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편 3장이었다. 독서모임은 언제나 즐겁지만 시험 전이라 다소 부담이었다. 그래도 내게 중요한 건 자격증 한 장이 아니라, 생각의 기초가 되는 고전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했다.

마곡하늬중학교에서 한자시험에 응시했다. 외운 것은 외운 대로 쓰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비웠다. 칠할 도塗자를 놓친 게 좀 아쉬웠다. 역시 한번에 외우지 못한 건 두세 번 봐도 못 외운다. 시험 막판에 못 외웠던 한자들을 마구잡이로 봤던 게 꽤 효과가 좋았다. 내가 아는 건 잠시 접어두고, 모르는 것들만 자꾸 보는 것이 외우거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그걸 이제 알았다.

시험을 보고 난 뒤에는 지원의 공방에서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다. 지원과 함께 일하는 한비라는 친구도 껴서 셋이 파전에 술을 한잔 했다. 연애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책을 오래 본 사람이 책에 통달하듯이, 사랑도 오래 해본 사람이 사랑하는 일에 능숙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공부한 것: 『존재와 시간』 2편 3장


2021. 5. 16. 일. 파전 먹기 좋게 비옴

3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곤욕을 치르던 독일 친구들 두 명을 도와줬다. 그때 그 인연을 계기로 지원과 함께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영어와 독일어, 손짓 발짓을 써가며 재미있게 대화했다. 수 시간이 금세 지나고 인스타 친구 두 명이 늘었다. 지원도 아주 좋아해서 행복했다. 한자 다음으로 중국어와 독일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어는 방학 때 집중적으로 하기로 하고, 우선은 중국어에 힘을 쓰는 편이 낫겠다. 한자를 외우던 습관이 중국어로 옮겨가면 좋을 것 같다.

지원에게 ‘비전 있다’는 표현에 대해 물었다. 지원은 ‘비전 있는 삶’과 ‘비전 있는 사람’을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비전 있는 삶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명확히 보이는 삶이고, 비전 있는 사람은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든 막힘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안정과 변화라는 틀로 그녀의 구분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곱씹어보기로 했다. 지원도 철학자가 다 됐다.

오늘 공부한 것: 3시간 동안 영어, 독일어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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