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law): 혁명론

Arendt, Hannah, On Revolution, Penguin Books, 1963.
한나 아렌트, 『혁명론』, 홍원표 역, 한길사, 2004.

홍원표의 번역은 아렌트의 문단 구성에 변화를 가했다. 따라서 이 책은 아렌트의 생각을 전달한 번역서라기보다, 그의 의도적 문단 재배치를 고려할 때, 역자의 추가적인 생각을 담은 주석서라고 볼 수 있다.

내용 요약

서론

[정당화되는 폭력으로서 전쟁과 혁명]
1 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이다. 19세기의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전쟁과 혁명은 정치적 문제를 구성한다. 전쟁은 세계를 파괴하고, 혁명은 인류를 드러낸다. 역사의 시작은 정치의 실존을 나타내고, 폭정에 맞선 자유의 원리를 나타낸다. 2 과학은 정치적 자유를 은폐한다. 3 고대 그리스의 polis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전투가 정당화됐다. 설득을 통한 정치는 polis의 성벽 안에서만 유지됐기 때문이다. 4 반면 로마는 필연성의 관점에서 전쟁을 정당화했다. 5 전쟁에 대한 전통적 정당화는 정치적 자유 개념이 없다.

[파괴의 위험 앞에 놓인 세계와 정치적 자유]
6 정치적 자유의 개념은 무기의 파괴력이 그 무기의 이성적인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논의됐다. 다음 네 가지 사실은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7 첫째, 무기로 인해 군인과 시민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총력전은 총체적 파괴가 됐다. 8 둘째, 전쟁 이후에 어떤 정체도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 이로 인해 전쟁은 정치적 삶과 죽음에 관계되고, 정부는 ‘빌린 시간’을 살게 됐다. (15) 9 셋째, 전쟁이 억제의 수단으로 변모되고,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 10 열전(Hot war)이 냉전(Cold war)으로 변함으로써 핵무기는 신화인 동시에 실재가 됐고, 세계는 한번에 파괴될 수 있는 지경에 놓였다. 11 이런 관점은 핵실험으로 명백히 드러난다.

[정치 현상으로서 폭력과 새로운 시작]
12 전쟁과 혁명의 상관관계와 상호의존성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혁명이 전쟁보다 중요하게 변했다. 전쟁은 혁명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발발했다.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인간이 한번에 사라지지 않는 한, 세계에서 혁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전쟁과 혁명은 폭력의 일종이므로 정치적 영역 바깥에서 벌어진다. 14 다만, 폭력이 완전히 지배하는 곳에서는 법을 포함해 모든 것이 무언성에 빠진다. 전쟁 이론이나 혁명 이론은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무언성에서 벗어나고, 정치적으로 한정짓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을 정치적 경계 현상(marginal phenomena)으로 만든다. 15 정치적 영역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가운데 사건(event)이 발생할 때 형성된다. 역사적 사건은 시작의 존재(the existence of a beginning)로부터 가능하다. 16 폭력은 시작이며, 시작은 폭력의 사용이나 위반(violating)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정치적 조직은 죄악(crime)에 그 기원을 둔다.
[시작은 그 자체 폭력이라는 본질을 갖는가, 기존 ‘질서’ 하에서 폭력으로 ‘해석’되는가? 폭력은 언어 무언성을 지킨다. 무언성으로 인해 정치 영역 밖에서 일어난다.]

혁명의 의미

1 [혁명의 기원과 역사적 해석]

1 혁명은 범죄적 시작으로서 정치적 사건이다. 근대적 혁명은 새로운 시작과 연관된 로마나 그리스의 혁명과 같지 않다. 2 근대 혁명은 사회적 문제 즉 경제적 동기로 인해 발생하고 부의 분배를 요구한다. 3 부자와 빈자의 구분은 고대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근대에서는 다수의 노동자를 구제해야 할 가난으로 이해됐다. 4 미국의 사회적 번영은 만성적인 빈곤을 극복했고, 미국 혁명이라는 사건만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5 미국 혁명 정신이나 몽테스키외의 권력 분립과 같은 사상은 유럽의 혁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6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준 것은, 정치적 영역을 바꾼 미국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평등관과 같이 변화된 미국의 사회적 모습이었다. 7 혁명의 기원은 기독교적이라기보다 세속적이며, 혁명의 조건은 새로운 정치질서novus ordo saeclorum을 건설해 정치적 결실을 맺는 것이다. 8 혁명의 또 다른 조건은 사건의 새로움novelty과 유일함uniqueness인데, 기독교적 역사관에서 그러한 변화는 인간사에 신이 개입하는 단 한 차례만 가능하다. 9 사건의 새로움과 유일함은 로마의 ‘현상의 안정성stability of status quo‘을 침해하는 그리스의 ‘새로운 이들νέοι’과 유사하다. 그리스적 역사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으며, 무한히 계속되는 반복만 있을 뿐이다.

2 [혁명의 조건들]

1 근대에 이르러 자유freedom를 위한 급격한 변동은 혁명의 조건으로 이해됐다. 2 근대 혁명에서 자유는 새로운 시작의 경험과 일치한다. 3 해방liberation은 자유의 조건이나 그 자체 자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4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는 지배자-피지배자 구분을 무화하는 비지배 즉 이소노미isonomy였다. 5 이소노미는 본질적이며 조건적인 평등이 아니라 인위적 법과 폴리스를 필요로하는 평등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인위적 제도가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근대의 입장과는 달랐다. 6 지배는 동료집단을 상실하여 정치공간을 파괴하는 행동이므로, 타인의 현존은 자유의 조건이 된다. 7 근대의 자유liberty는 정부의 부당한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만을 의미하는데 반해 실재적인 자유freedom는 공공문제에 참여하거나 공공영역에 진입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8 liberty는 군주정을 유지해도 가능하지만 freedom은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부형태를 수립해야 가능하다. 9 18세기의 혁명 과정에서 사람들은 해방을 위한 행위를 통해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정치공간을 형성했다. 10 해방을 위한 정치적 활동들이 미국혁명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만들었다. 11 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 12 혁명은 새로움이 자유의 이념과 연결되어야 하므로 성공적 폭동이나 내란 쿠데타는 혁명으로 이해할 수 없다. 13 단순폭력이나 단순변동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변동, 새로운 정체를 위한 폭력, 자유를 위한 해방이라는 조건들이 모두 만족되어야 혁명으로 일컬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혁명을 기술하는 용어와 마키아벨리의 정치폭력론]

1,2 새로운 시작으로서 혁명의 현상과 용어는 마키아벨리에게서도 등장하지 않았다. 단 마키아벨리는, 고대의 정권교체 이론 대신, 도덕과 엄격히 구분된 순수히 세속적 영역을 제시했다. 3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의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해 폭력의 정치적 의미를 탐구했지만, 로마의 정신은 폭력이 아니라 권위와 관련되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반란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중세 도시의 소멸이었으며, 18세기 이후 혁명가들은 마키아벨리를 추종했지만 로마의 정신을 복원하지는 않았다. 4 마키아벨리에게 건국은 폭력적 범죄와 새로 제정한 법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으므로, 신적인 절대성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인간 복수성은 법에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으며, 마키아벨리의 희망은 인간에 신적 특성이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됐다. 5 마키아벨리 이후 국가lo stato를 대체하는 새로운 용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6 혁명은 낮은 자의 최고주권 행사를 통한 해방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을 중심으로 정치가 발생된 고대의 반란이나 반역과는 다르다. 7 통치자를 교체하는 수준에 그쳤던 중세, 신분을 넘어 정치적 역량을 중시한 르네상스 반란은 혁명이 될 수 없다.

4 [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과 등장]

1 혁명 시작단계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했으나, 새로움이라는 혁명 정신은 혁명 과정에서 나타났다. 2 혁명의 원래 용어는 규칙적, 합법칙적, 반복적, 순환적 운동을 나타내는 코페르니쿠스의 운행revolutionibus(공전)이었다. 공전은 폴리비우스의 순환anakyklosis의 라틴 번역어로서, 그리스 정치철학의 순환적 정체 이론이 전제된 용어였다. 3 1660년 Charles 2세의 군주정 복귀 때 복구Revolution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4 17세기 이후 혁명의 태동기에는 자유의 복구를 시도했다. 5,6 1765년의 미국과 1789년의 프랑스는 각각 식민지배와 전제정으로부터 박탈된 고대적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고자 했다. 7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식은 로마의 인간homo 인식 즉 권리 없는 노예도 법적으로 자유민과 동일했던 인식에 근거한다. 8 혁명의 동기는 새로움이 아니라 구질서의 복구였으나, 18세기 혁명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가 정치현상으로 인식됐다.

5 [혁명의 불가항력성과 헤겔철학]

1,2 혁명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새로움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는 멈출 수 없다는 불가항력성이다. 3 자유를 위해 공공영역에 드러난 다수의 힘은 인간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4 혁명의 불가항력성은, 정부의 범죄나 자유의 진보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명예에 대한 인식이 공적 영역에 드러날 때, 증대된다. 5 이러한 불가항력성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은 필연적 현상으로 인식됐다. 6 프랑스 혁명 이후의 모든 봉기들도 프랑스 혁명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인간사 외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7 반면 미국 혁명은 인간이 주도적으로 행위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과 차이가 있다. 8 프랑스 혁명은 헤겔철학을 낳았는데, 첫 번째 특징은 역사철학이다. 인간사를 절대적 역사성의 실현으로 해석하여 활동의 영역을 관조로, 정치학을 역사철학으로 대체했다. 9 헤겔 역사철학의 오류는 관찰자의 관점으로 행위의 영역을 기술하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인간사에서는 행위가 종결될 때 그 행위들의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가 비롯됐다. 10 그러나 세계 “역사”라는 절대적이고 보편적 개념은 인간의 특수한 활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헤겔 역사철학에 한계가 있다. 11 헤겔철학의 두 번째 특징은, 자유와 필연의 변증법이다. 역사의 필연성이 실재적 현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관점은 미지의 현상이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12 이로 인해 미국 혁명보다 프랑스 혁명이 더욱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13 그러나 미국 혁명은 새로운 정치질서 수립에 관심을 가졌음에도, 프랑스 혁명은 후기에 들어서면서 그 정치적 의의를 잃었다. 14 프랑스 혁명의 행위적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만 주목한 결과, 19세기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볼셰비키는 이데올로기와 테러에 무력한 인간의 연약성meekness을 공략했다. 15 인간사에서 역사적 차원만 주목하고 행위적 차원을 무시하는 인간은 우스운 바보가 된다.

사회적 문제

[프랑스 혁명에서 생물학적 필연성의 개입]
1 프랑스 혁명에 나타난 필연성은 역사의 필연성이라기보다 빈곤에 대항하여 생존하기 위한 절박함의 필연성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다수는 빈곤층이었으므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목표를 자유에서 풍요로 바꾸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사회 문제를 정치화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부르주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풍요롭게 바꾸도록 혁명의 목적을 바꾸었다. 레닌도 빈곤 상태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며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2 프랑스의 빈곤은 혁명을 사회적 문제로 만들었다. 미국에도 빈곤이 있었으나 결핍된 태도는 없었다. 노예제라는 사회문제도 정치적 맥락에서 해결됐다. 신분 상승이나 교육도 사회적 맥락이 아니라 정치적 맥락에서 인식됐다. 빈곤이 야기한 동정에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에서 동정과 도덕의 개입]
3 프랑스 혁명은 지롱드 당의 정치적 실패를 계기로, 자코뱅 당에 의해 사회화되었다. 인민(le peuple)은 동정의 대상으로 이해됐고, 입법권력은 동정적 사회집단에게 부여됐다. 프랑스 혁명이 근거한 루소의 일반의지론은 개별 시민의 특수의지를 적대시했고, 이로 인해 정치적 다양성이 탄압됐다. 이러한 동정적 정치행태는 전체적 단일한 의지가 언제나 개인의 이익을 지배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테러와도 연결된다. 루소에 의해 동정은 사유하는 이성적 인간의 자연적 자질로 이해됐다. 동정은 불쌍한 인민을 결속시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아가 절대적 선과 연결되어 이해됐다. 법의 영역인 사회는 미덕과 악덕의 영역이므로, 절대적 선과 악을 인식할 수 없는 공간이다. 법은 영역 밖의 절대 악을 처벌할 수 없고, 절대 선이 절대 악에 행하는 폭력을 처벌해야만 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동정은 일종의 사랑이며, 정치적 공간을 파괴한다. 정치는 서술과 논증을 통해 공통의 관심사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선은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정치적이지 않다. 4 로베스피에르의 동기는 연민으로 바뀐 동정이었다. 사회적 필요는 정치적 행위를 사회적 관리로 바꾸어놓았고, 적빈자에 대한 무제한적 미덕은 법을 파괴했다. 프랑스의 인민 개념은 의견의 일치를 통한 여론 형성을 중시한 반면 미국의 국민 개념은 의견의 다양성을 중시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동정은 사회적 관리를 요청하는 동기가 됐지만 모든 정치적 행위를 의심의 대상으로 여겨 범죄적 폭력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인간사에서 동기는 애초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현상이 곧 실재인 정치영역에서, 동기를 명백히 드러내라는 요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위선에 대한 테러와 정치적 가면으로서 법인격]
*5 [원문과 함께 읽어봐야 할 곳] 프랑스 혁명은 위선에 대한 적대로 인해 테러 즉 공포정치로 변질됐다. 선의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테러는 위선에 대한 테러였으며, 권력 남용 및 무능력에 대한 테러였으므로 역사적 필연성을 함의했다. 위선은 다른 악덕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비판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현상만 나타나므로 ‘위선에 은폐된 실재가 드러나야 한다’는 전제는 타당하지 않다. 거짓은 타인을 속이는 행위이므로 자기기만인 위선과는 구별되고, 오히려 자기기만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선보다 순수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현상과 실재를 구분하여 진리로서의 실재를 드러내야 한다는 기독교-마키아벨리적 세계관에서 가능하며, ‘신에게는 선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세인들에게는 악덕으로 평가받는 행위를 공개적으로 행하는 것을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오히려 위선은 약속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점과, 위선을 몰아내려는 프랑스 혁명이 그 자체로 위선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프랑스 혁명은 사회적 ‘가면’을 떼어내려는 시도로 표현되는데, 가면(persona)은 시민을 보호하고 공적 영역에 드러내는 법인격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가들은 정치를 거부하는 자들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정치가 기만의 수단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페르소나’라는 법인격은 “정치체가 부여하고 보장하는 법적 인격”으로서 정치적 시민을 법 앞에 평등하도록 만드는 반면, 공포정치는 법인격을 부정함으로써 연약한 자연인들을 지배한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인 「인권선언」은 생존의 필요를 정치의 목적으로 전도시킴으로써 정치를 인위적인 행위에서 자연적 행동으로 변질시켰다. 6 결과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가난한 자들이 개입하면서 실패하게 됐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를 수단화하는 가운데, 정치의 사회적 무능과 정치인의 위선을 발견했기 때문에 적빈자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분노는 폭력을 낳았고, 폭력은 반복되고 증폭되어 테러가 됐으며, 결국 혁명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생물학적 필요는 불가항력적이었으므로 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인의 행위가 사라진 평등 속에 필연성을 찾았다. 이러한 필연성과 폭력은 불가항력적으로 혁명을 실패하게 만든다.

행복의 추구

혁명은 정치적 권위 상실의 결과였다. 미국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는 달리 필연적 혁명 정신의 집착이라기보다 공적 자유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공공 영역에서 정치행위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혁명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문필가들은,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당대 지식인들과는 달리, 이론적이었으며 공적 공간을 갖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한 자유는 공적 자유가 아니라 철학적 자유였다. 프랑스 혁명은 빈민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공적 공간을 갖지 못했으며, 해방이라는 사적 목적으로 왜곡됐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치체를 구축하고 혁명 정신을 보장하고 유지한다는 헌법은 프랑스 혁명에서 권위를 얻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공적 자유는 사적 행복으로 변형됐다. 원래 미국에서는 공공 영역에 참여함에 따라 행복감을 느끼는 ‘공적 행복’이 중요하게 이해됐다. 그러나 「독립선언」에 ‘행복 추구’라는 문구가 ‘공적 행복’이라는 문구를 대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결핍이라는 절대적 필연성에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공적 공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건국 1: 자유의 확립Constitutio Libertatis

1 [혁명과 헌법 제정의 관계]

1 혁명의 목적은 자유의 확립이고 혁명의 내용은 공화국의 설립 즉 헌법 제정이다. 2 혁명이 해방에 그치면 반란이지만, 헌법 제정으로 이어지면 새로운 정치질서가 확정됨으로써 자유가 확립된다. 3, 4 역사가들은 헌법 제정이 반혁명적라고 보는 이유는 총 세 가지인데, 첫째 이유는 입헌정부를 법에 의해 권력행사가 제한된 정부로 보기 때문이다. 5 둘째 이유는 혁명의 형태가 자유를 실현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적 영구혁명, 그리고 혁명 실패의 결과로서 시민의 사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 그치는 입헌정부의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6 그러나 헌법은 정부를 구성하는 원리로서 인민이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7 셋째 이유는 국민의 동의 없이 헌법이 제정되는 경우 ‘제도’는 합법성의 타락을 야기하며 권력과 권위, 안정성을 모두 잃기 때문이다. 8 권력에 대한 신뢰는 시민의 사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한 헌법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체계를 성립하기 위해 인민이 제정한 헌법에 가며, 유럽 혁명의 실패는 혁명가들이 헌법의 이러한 본질에 대해 무지했다는 데 원인이 있다. 9 미국 혁명은 통치자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특수한 정치 영역에서 새로운 권력을 확립하고자 시도했다. 10 반면,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목적도 내용도 될 수 없는 보편적 인간 일반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시도했다. 11 정치 영역은 권력과 자유가 결합될 때 형성된다는 점을 볼 때, 미국 혁명은 새로운 정치 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그리고 정부의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기 위해 시도했으므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12 권력의 본질은 권력에 의해서만 통제될 수 있다는 점과 폭력에 의해 무기력해진다는 점이다. 법에 의해 제한되는 ‘권력’은 사실 권력이 아니라, 다수의 권력을 독점하여 배가된 독재자의 강성strength으로서 폭력에 가깝다. 그러므로 법은 권력을 제한할 수 없고 오히려 권력이 법을 폐지시키기도 한다. 권력은 권력을 유지하고, 과다한 권력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므로 권력 분리의 원리는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본질을 잘 반영한 정치 형태이다. 13 미국 혁명의 결과인 연맹 공화국은 13개 주 사이의 주권이 서로 파괴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였다. 14 연맹 공화국은 다른 권력을 무기력하게 만들하고 상호 파괴하는 주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 정부가 아니라 권력끼리 상호 견제하며 더 많은 권력을 창출하도록 장려하는 동맹 기구처럼 기능한다. 15 미국 헌법의 목적은 혁명의 목적이었던 자유를 확립Constituto Libertatis하는 데 있었다. 16 유럽 헌법은 혁명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제정된 반면, 미국 헌법은 영구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원리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제정됐다.

*2 [혁명의 결과로서 헌법, 법과 권력의 관계]

1 혁명은 고대의 자유 즉 상실된 권위와 권력을 회복하는 작업으로 오해됐다. 2 미국 혁명은 제한군주정을 축출한 반면, 프랑스 혁명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력potestas legibus soluta으로서 법과 권력의 원천으로 이해됐던 절대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일반의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3 미국 혁명은 자기통치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룬 혁명으로서, 문자화된 문서 즉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세계적 실재”로서 헌법을 제정했다. 4 미국 혁명이 이후에 반복되지 않은 이유는 헌법 제정의 가치가 하락하고 입헌정부가 혁명으로 축출된다는 오류가 통설로 인정되어 혁명이 무한한 혁명독재를 낳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5 유럽의 절대주의는 종교의 세속화에 따라 종교적 권위를 왕의 인격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6 그러나 인간인 독재자에게는 신과 같은 권리의 근원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절대주의는 언제나 전제정이나 독재정으로 변질되었다. 세속화는 기존 형식을 유지한 채 통치자만 신에서 인간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7 그러므로 세속화는 기존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법과 권력에 권위를 부여하는 혁명으로 인정할 수 없다. 8 세속화는 절대주의를 낳고 절대주의의 몰락은 혁명을 낳는다. *9 정치영역에서 절대주의는, 실정법이 외부적 근원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는 합법성 문제와, 법에 권력을 부여하는 헌법은 그 자체 헌법적이지 않으므로 건국이라는 선결 문제 요구petito principii를 해결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합법성에 대해서는 시에예스의 해결책은 실정법에 더 이상 상위법을 두지 않는 전제정으로 귀결되거나 선험적 역사성이나 신적 인격이라는 또 다른 근원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10 선결 문제 요구에 대해 시에예스는 헌법 제정권과 법 제정권을 구분하고 국가를 자연상태의 개인과 동치함으로써 시도하고자 했지만, 법 제정권은 입헌적이지 않은 제헌의회로부터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과 합법성은 법 외의 영역의 의지로부터 정당화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 의지는 나폴레옹의 사례와 같이 조작될 수 있으며, 그 실질은 소속된 집단의 이익일 뿐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11 시에예스의 해결책은 다수의 의지가 결정의 원리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그러나 다수의 원리는 전제정을 제외한 모든 정치체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합당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반면 공화주의는 결정의 원리가 헌법이라는 객관적이고 세계적인 실재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3 [프랑스 혁명의 절대주의와 미국 혁명의 공동 결사]

[절대주의를 극복한 미국의 공동 결사]
1 프랑스 혁명은 인민들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 제헌권력으로 인해 헌법 제정권과 법 제정권의 악순환에 빠진 반면, 미국 혁명은 자치조직으로부터 권위를 인정 받아 선출된 제헌권력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연방 제제를 성공적으로 구성했다. 2 미국에서는 독립선언으로 혁명이 종료되기 전부터 헌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사실을 통해 미국에 확산된 권력재민 사상, 인민의 동의로 부여받은 제헌의회의 권위,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의 부재 즉 절대주의의 극복을 확인할 수 있다. 3 미국 혁명은 사회 경제적 행복이 아닌, [공적 행복이라는] 새로운 권력 개념을 낳았다. 4 새로운 권력은 청교도들의 약속들, 예컨대 <메이플라워 서약>이나 <코네티컷 기본법>, <플렌테이션 서약>과 같이, 영국 정부와 무관하게 체결된 시민적 정치체의 상호 약속이 자발적으로 법과 도구를 구성한 사실들로 확인할 수 있다. 5 시민적 정치체는, 주권 없는 권력이자 권리 주장이 가능한 정치 영역으로서, 지배-피지배 관계를 함의하지 않으므로, 확장이나 정복이 아니라 결사나 공동결사를 가능하게 했다. 6 미국 혁명의 정치 경험은 사회계약이 ‘정부에 지배되는 데 대한 동의’가 아니라 ‘자유로운 동료 시민들 사이의 합의’라는 사실을 알게 한 실천적 행위이자 이론이 미처 해석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공동 결사를 구성하는 약속]
7 사회계약에는 인민들 사이의 합의와 통치자에 대한 인민의 피지배 동의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나, 영국 식민지 개발 이전에는 이 두 가지 개념이 구분되지 않았다. 8 인민들 사이의 합의는 호혜성과 평등을 기반으로 하여, 약속이라는 계약 내용을 가진다. 이에 따라 사회societas 즉 공동결사를 형성하여 고립을 극복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한다. 반면 통치자에 대한 피지배 동의에서는 인민이 개인의 강성과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게 한다. 9 동의는 절대자 앞에서만 가능한 반면, 상호 약속은 복수성이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며, 정치체는 약속의 결과로서 권력의 근원이 된다. 10 약속은 권력이 구성되는 수단이자, 상호 계약 그 자체로서 미국 혁명의 결과인 공화주의와 연방의 원리가 된다. 반면 권력 양도는 절대주의를 전제한다. 11 약속에 대한 청교도의 믿음은 <구약 성경>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약속에 근거했으므로, 절대주의적 동의는 담지하지만 상호 약속에 대한 이론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12 상호 약속의 기원은 신대륙을 향한 청교도들의 모험이 매우 불확실했으므로 청교도들이 서로의 확신과 맹약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13 미국 혁명의 경험은 개인적 동기 또는 원죄라는 인간 본성을 극복하고 공동의 노력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현실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유대와 약속이 가능해졌다.

[약속의 세계성과 법]
*14 인간 복수성이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권력은 혼자 있어도 성립하는 개인적 능력 또는 강성strength과는 다르다. 약속은 결사를, 결사는 권력을 가능하게 한다. 약속은 불확실한 미래에 안정성을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구성한다. 권력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worldly in-between space”에만 존재하므로, 권력은 세계적이다. 건국으로 나타나는 약속하기와 약속지키기는 최상의 정치행위이다. 15 행위는 권력을 형성하고 약속이라는 수단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권력은 약속을 통해서만 유지되며 동료 시민과 후손을 위한 상호 약속으로 드러난다. 16 상호 서약은 잠재적 권력으로서 공적 조직체를 건설한다. 전통적 사유에서 상호 약속과 지배는 서로 구분되지 않았으므로, 미국 혁명 당시 혁명 참가자들은 상호 서약이라는 자신들이 실천하는 행위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해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17 정부의 법 즉 합법성은 권력의 인정일 뿐이나 인민의 법 즉 합의는 정부의 인정만큼 권력과 권위, 안정성을 갖고 있다. 미국 혁명 당시 이론가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해 영국 정부의 승인으로 권력이 창출된 것으로 오해했다. 18 정부는 인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과 원위로 형성되며, 미국 혁명은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정치적 경험이었다.

건국 2: 새로운 질서Novus Ordo Saeclorum

1 [권위로부터 도출되는 합법성, 절대자의 요청과 공동체적 합의]

[약속의 관점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혁명 비교]
1 권력은 권위나 폭력과 구분된다. 프랑스는 절대주의 배경에서, 미국은 신민들의 동의가 전제된 제한군주정 배경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19세기까지는 재산이 자유를 보장했으므로 법은 재산을 지키는 기능을 했으나, 20세기에는 [무산계급 자유민이 나타나면서] 법이 자유를 보장하기 시작했다. 2 프랑스 인민은 구성조직이 아니었으므로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형성된 서로간의 유대를 해체했으나, 미국 시민은 구성조직이었으므로 상호 약속이 복종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 프랑스 혁명은 권력의 근원을 정치 밖 자연적 강제력force 즉 다수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인민으로 상정했으므로 구체제 계급을 일소하고 권력을 소멸시켜 새로운 권력을 잉태하지 못했다. 반면 미국 혁명은 호혜성과 상호성을 바탕으로 약속을 통해 조직화하여 새로운 권력을 창출했다.

[법의 세계성과 권위 문제]
*4 계약이라는 약속은 영속성이 충분하지 않아 세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법치국가 즉 공화국에서 권력은 법의 존재근원이나 권위는 실정법을 정당화 하는 ‘상위법’이다. 상위법을 수용해 인정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면, 권위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약속 즉 법의 세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 모두 권위를 위한 절대자를 요청했으나, 프랑스는 법과 권력을 동근원적으로 여긴 반면, 미국은 인민(아래)에서 권력을 위(절대자)에서 법(권위)을 도출하여 서로 구분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5 프랑스 혁명은 일반의지로부터 권력과 법이 모두 도출된다고 주장하여 인민을 신격화함으로써 절대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법의 근원은 일반의지가 아니라 혁명의 과정 그 자체였다. 6 루소는 시에예스가 헌법제정의 악순환을 발견한 것과 유사하게 인정법man-made law의 정당화를 위해 신적인 절대적 존재를 요청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7 이에 따라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는 ‘최상의 존재Supreme Being’을 요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로베스피에르에게 최상의 존재는 절대적 주권, 절대적 불멸성, 절대적 권위의 요청에 따른 결과였는데, 그 중 절대적 권위는 새로운 정치체의 법이 합법성을 지니는 조건이었다. 8 절대적 권위는 미국에서도 요청됐음을 「독립선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절대자 없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입법 정신]
*9 그리스의 νόμος와 로마의 lex는 절대자를 요청하지 않았다. 절대자를 요청하는 신적 입법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자를 승인하는 것인데, 고대 입법에서는 법에 자유로운 입법자를 참주tyranny라 일컬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입법가는 외국인일 수 있었으나, 입법이 곧 공동체의 확립이었으므로 입법자가 공동체(법) 외부의 존재자는 아니었다. νόμος는 인위성과 공간성(권력을 정당히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을 함의하는데 그 정당성은 ‘상위법’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았다. *10 lex는 연결을 의미하는데, 특히 합의와 조약을 통한 평화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lex는 건국 이후에 입법된다는 점에서 νόμος와 차이가 있다. lex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단일한 ‘인민le peuple‘과는 별개의 의미를 갖는다. 로마 국민populus Romanus은 귀족과 평민의 합의라는 공화국에 그 존재 근거를 가졌으며, 12표법이라는 문서가 작성됨으로써 안정성을 가졌다. 법leges은 동료socii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로마 사회societas Romana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1 몽테스키외도 법을 관계rapport라고 정의함으로써 로마의 lex와 유사하게 연결의 의미로 이해했다.

[신적 입법을 극복하는 공동체적 합의]
12 ‘명령’의 형태로 나타나고 ‘처벌’을 수반하는 신적 입법은 기독교 신법에서 비롯된 절대주의의 산물이었다. *13 lex의 공법과 사법은 신법이 아니었으나 lex를 해석하는 방식은 유대인들의 ‘십계명’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17-18세기 자연법 사상이었다. 자연법은 신의 자리를 대체했으나 신의 권위를 갖지 못한 자연적 강제력force이었으므로 신적 제재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14,15 인정법에 대한 종교적 승인이 ‘보상’과 ‘처벌’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보상과 처벌은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이해됐다. 16 「독립선언서」 전문에는 “우리는 이 진리가 자명하다고 주장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진술은 ‘합의에 기초한 진리’로서 설득과 증명이 필요 없이 따라야 하는 권위를 나타낸다. 17 수학적 진리는 수학 ‘법칙’이 지닌 자연적 권위를 나타내는데, 공동체 ‘법’의 인위적 권위와 유사한 기능을 발휘한다. 단, 인위적 권위는 이성의 진술이므로 합의가 필요하나 자연적 권위는 신체적 능력에 따른 진술로서 합의가 불필요하다는 차이가 있다. 18 「독립선언서」 전문은 헌법에 신성성과 불가부정성 즉 권위를 부여했다. ‘빛’의 모티프로 나타나는 자명한 진리는 신의 권위 즉 복수나 처벌에 비견되는 권위를 갖는다.

2 [헌법 제정과 새로운 시작으로서 원리]

[미국의 건국행위와 법의 권위]
1 신대륙의 불가예측성으로 인해 약속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시작이 가능했다. 2 혁명 이후 미국은 여전히 유럽 전통에놓여 있었으므로 상호 약속이나 공적 행복에 대한 이론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건국 선조들의 건국 행위는 새로운 정치체에 대한 권위를 유지했다. 3 미국과 프랑스 모두 고대 로마를 모방했다. 4 전통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고대, 특히 로마 공화정에서 발견했다. 5 미국 혁명에서 헌법은 종교적 수준으로 숭배되었는데, 이러한 숭배는 고대 로마의 공화국으로부터 미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의 안정과 권위를 도출하는 결속religare으로서 경건pietas으로 해석할 수 있다. 6 미국 혁명은 헌법을 숭배함에 따라 정치체의 안정이 실현된 이후부터 성공했다. 건국행위는 절대저의 처벌이나 진리의 자명성이 아니라 공화국의 안정이었다. *7 그 안정은, 로마의 원로원 제도를 모방하여, 권위를 대표하는 사법부와 권력을 대표하는 입법부 및 집행부로 구분한 지점에서 시작됐다. 입법부는 권위 없는 권력이었던 반면, 사법부는 “정의라는 법정의 매개체”로서 권력 없는 권위였으며, “연속 회기 상태에 있는 일종의 제헌의회”인 사법부가 권력의 결여한다는 사실이 곧 권위를 입증했다. *8 로마 원로원의 권위는 건국 선조를 대표하는 시초로서 정치적 조언을 했지만, 미국 대법원의 권위는 성문화된 헌법에 따라 사법적 해석을 했다. 권위auctoritas는 ‘늘이고 증대한다augere‘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건국정신이라는 전통을 계승하고 후계자들에게 전해주는 지속성이 곧 권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건국이라는 시작과 보존이라는 지속이 합쳐졌을 때 권위가 실현되며 이때 변화는 영구성과 연계되어 지속하고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9 미국의 혁명가들은 고대 로마의 공화국 모델을 통해 연방을 항구화하고자 기획했으며, 헌법 수정 조항이 건국행위와 계속해서 연결된다는 점에서 권위가 나타난다. 10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라는 명칭은 오만이 아니라 후손들을 고려한 영구적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들에 대한 존경이 곧 새로운 정치체를 유지하는 권위로 작동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작명이었다. *11 ‘헌법’이라는 용어는 건국 이전의 ‘입헌행위’와 건국 결과인 ‘성문헌법’을 의미하기 때문에, 헌법 조항에 대한 문제들[해석, 수정 등]은 건국 행위에 대한 기억으로 해결된다.

[새로운 시작으로서 행위의 원리]
12 권위의 근원은 입헌행위 즉 새로운 시작이다. 13 미국 혁명에 영향을 준 두 가지 건국 신화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신화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였는데, 두 신화의 공통점은 낡은 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 사이를 기술한 신화라는 점이며, 교훈은 해방이 자유의 조건이나 그 자체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특히 새로운 시작에는 시공간적 위치를 기술할 수 없다는 점이 나타난다. 14 새로운 시작의 본질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자의적 척도를 지닌다는 점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은 그 자신을 설명하는 절대자를 요청한다. 15 로마의 역사는 영구적 도시의 건국urbs condita이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16 그러므로 로마의 정치변동은 언제나 건국 이념의 재구성이자 복구으며, 시민을 수단화하는 제작이나 폭력이 아니었다. 17 로마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로물루스가 아니라 아이네아스에서 찾았는데, 신화에서 아이네아스는 전쟁을 수반했음에도 그 전쟁은 폭력이 아니라 결속과 합의를 상징했다. 18 로마법은 국민들 사이의 조약으로서 제휴와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건국정신이었다. 19 로마의 건국은 트로이의 재건이었지만 미국의 건국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는 것이었다. 20,21 로마적 재건보다는 미국적 시작이 더욱 중요하며, 미국의 건국은 로마와의 단절 즉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인간사에서 절대자와 같은 것은 세계에 시작을 드러내는 ‘원리principle’ 즉 행위의 법칙[헌법]이며, 원리는 어원상 시작을 의미한다. 22 그러나 혁명은 새로운 시작과 폭력이라는 모순적인 개념을 동시에 갖는다.

혁명적 전통과 그 전통이 잃어버린 보물

1 미국 혁명이 혁명 전통에서 배제되고 미국도 스스로 미국 혁명을 망각함으로써 가치가 퇴색됐다. 그 결과로 러시아의 혁명은 자유를 확립하지 못했고 소련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실패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은 그 자체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고 있으나 정치이론은 시작과 안정성을 대립시켰다. 공화주의는 지속성을 추구하는 정치체이다. 만장일치의 여론은 다양한 의견의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 의견은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언제나 특정한 부분적 집단을 대표할 수밖에 없는 이익과 구분된다. 오직 공화국만이 의견을 공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혁명은 지속적인 제도에 대한 요구에 따라 발생했다. 헌법은 항구성과 안정성을 추구한 결과로 제정되었다. 2 혁명 정신은 새로운 것인 동시에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것을 시작하는 정신이며, 혁명은 건국으로 완성된다. 자유는 건국 행위 즉 헌법 제정과 동일시된다. 혁명은 반란으로 실패하는 반면, 미국의 건국자들은 혁명을 정기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했다. 일반적인 시민은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으므로 대표성 문제가 제기된다. 프랑스의 갈등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적 정당 정치는 평의회 정치를 소멸시켰다. 3 정부 형태의 비대한 규모는 공화주의의 지속성을 위협한다. 대표성 문제는 근대적 부의 자기증식적 특성과 결부되어 공권력의 사적 악용 즉 부패로 드러나는데, 이러한 문제는 제퍼슨이 제시한 “기초 자치체”와 같이 모든 시민을 공공 영역에 드러내는 ‘가시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 혁명의 목적이 ‘자유’의 확립이라는 점을 볼 때, 개별 시민들을 자유롭게 하는 구 단위 자치체는 대규모 공화국의 목적이 된다. 4 평의회와 정당체계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소비에트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평의회는 모든 구성원이 공적 문제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정당논리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정당의 존재 의의는 참여자를 ‘지명’한다는 것이므로 양당체제에는 국민이 정치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직접 참여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정치가 소수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야 한다는 정당화가 아니라, 소수가 다수로부터 자유의 영역을 지켜내야 할 필요를 나타낸다. 대표자와 유권자의 관계는 지배에 대한 동의로 엮인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으로 구성된다. 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공적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공화국의 공적 업무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견해와 인용

서론


혁명의 의미

“이런 말들은 뻔한 소리일 것이다: 해방과 자유가 같지 않다거나, 해방은 자유의 조건이기는 하나 해방이 자유를 자동적으로 이끌지는 않는다거나, 해방(liberation)에 담긴 자유(liberty)의 개념은 오직 소극적(negative)일 뿐이기 때문에 해방의 의지마저도 자유의 욕망과 동일하지 않다는 말들 말이다.” (19-20)

“정치 현상으로서 자유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등장과 동시대적이다. 헤로도토스 이래로 자유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구분 없이 비지배의 조건 아래 함께 사는 정치적 조직의 한 형태로 이해됐다. 비지배의 개념은 이소노미라는 단어로 표현됐는데, 정치 형태 중에서 이소노미의 빼어난 특성은 고대인들이 짚은 것과 같이, 거기에는 지배의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폴리스는 민주정이 아니라 이소노미여야 했다. 다수의 지배를 표현하는 민주정은 원래 이소노미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지배없음이란 사실 다른 형태의 지배일 뿐이며, 그것은 가장 나쁜 정치 형태 즉 대중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20)

“이소노미(ἰσονομία)는 평등(ἰσότης)을 보장했지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나거나 창조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본성상(φύσει) 평등하지 않아 노모스(νόμος)의 힘으로 그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폴리스(πόλις)라는 인공적인 기관을 필요로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폴리스의 평등 즉 이소노미는 폴리스의 덕이지 인간의 덕이 아니었다. 시민권이라는 덕을 통해 평등을 부여 받았지 탄생이라는 덕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1)

“그리스 사람들은 동료 없이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해했으므로, 폭군이나 독재자, 가정의 주인이 완전히 해방되고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는다고 해도 자유롭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유와 비지배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등식에서 요점은 자신에 대한 지배자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고, 다른 이에 대한 지배에 대해서는 그가 스스로를 동료들로부터 빼놓음으로써 그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동료들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그는 정치적 공간 그 자체를 파괴했으며, 그 결과로 더 이상 그 자신에게나 혹은 그의 지배를 받는 이들에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 정치 사상에서 자유와 평등의 교차점을 나타내는 이 주장의 이유는 자유가 결코 모든 인간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의 활동의 드러냄으로 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다른 이가 보고, 판단하고, 기억할 때에만 실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의 삶은 다른 이의 현존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자유 그 자체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예컨대 아고라나 시장, 폴리스와 같이 정치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21)

사회적 문제

행복의 추구

건국 1: 자유의 확립Constitutio Libertatis

건국 2: 새로운 질서Novus Ordo Saeclorum

혁명적 전통과 그 전통이 잃어버린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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