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30. 금. 비
조교 근로를 하면서 『혁명론』을 읽었다. 홍원표 교수가 번역한 『혁명론』은 아렌트의 On Revolution에서 문단을 조금 더 잘게 쪼갰다. 한 문장에 한 생각이 담겨야 하고, 한 문단에 한 주장이 담겨야 한다고 할 때, 홍원표 교수의 번역은 아렌트의 문단에 여러 주장들이 난잡하게 섞여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번역서는 원저자의 주장을 가능한 한 고스란히 옮겨야 한다. 하물며 “번역은 반역(Translation is treason, translatio traditio est)”이라는데 뜻을 살리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저녁에는 이발하고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 친구는 스스로 공감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소위 ‘사이코패스’가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다른 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그 사실을 진지하게 말한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공감능력 없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그는 결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동동주에 보쌈을 먹었다.
오늘 공부한 것: 『혁명론』 두 절
2021. 5. 1. 토. 비온 뒤 맑음
아침 일찍 독서모임에 나갔다. 오후에 광주에 내려가야 해서 짐이 많은 탓에, 우산을 챙겨가라는 어머니 말씀에도 빈손으로 나왔다. 비가 와서 낙성대역 편의점에서 육천 원짜리 우산을 샀다. 어머니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독서모임에서는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을 놓고 토론했다. 하이데거는 ‘잊혀지는 것’을 실존적 죽음이라고 말했다. 유족을 남긴 시신은 그 시신을 계기로 망자를 기억하는 이가 있기 때문에, 무연고 사체와는 격이 다르다. 나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매스컴에서 접하는 숫자로서의 죽음은 차라리 ‘개죽음’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만큼 아무 의미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하이데거 표현에 따르면, 본래적 현존재는) 죽음을 떠올리며 세계에 자기 존재를 남기고자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자.
SRT를 타고 광주에 내려갔다. 두 시간 반만에 아주 먼 거리를 편안하게 갔다. 만나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임관 전에 다같이 찍은 후로 4년 만이다. 젊음과 성숙을 기록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집 근처에서 오리탕에 소맥을 마시고,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과자와 양장피, 짬뽕국물에 소맥을 마셨다.
모처럼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의 모자란 점, 부끄러운 것들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어릴적부터 나를 추동하던 지적 허영심도 모두 까발렸다. 그랬더니 마음이 참 편안했다. 사랑이 전제된 사이라면, 가끔은 불편한 것들을 해야 오히려 편안해진다. 술을 먹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2021. 5. 2. 일. 맑고 밝음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났다. 넓은 창에 가득한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웠다. 술이 덜 깨 머리가 무거웠다. 목포에 내려가서 바지락 비빔밥을 먹었다. 해안 산책로를 걷다가 또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다. 역시, “목포 피시방에는 바다맛이 난다.” 태영 형은 목포역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향했다. 병석 형은 KTX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환과 나는 용산역에 내려서 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밥을 먹다가, 헤밍웨이 단편선을 샀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마지막에 ‘행복한 웃음’을 지었는지 어쨌는지 통 기억나지 않았던 탓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이양수 선생님이, 일상적인 것들에 깊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쓰면 좋을 것이라고 하셨다. 어릴 때 읽은 책들을 다시 보면서, 글을 써버릇해야겠다.
그런 점에서, 제혁 형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차를 싫어한다.
아침에 면허를 땄다. 차를 좋아할 줄 알아야 어른이랜다. 면허도 딴 김에 좀 좋아해 보려고. 그러나
쓸 곳도 없는 면허. 언젠가 쓸 일이 있으리라 뒤늦게 마음 먹고, 직장 다니면서 짬짬이 시간을 냈다. 덕분에 피로한 몸이 더 피로한 몸이 되었어. 그래도 실수 없이 수월하게 취득하여 다행이다.
언제부턴가 능력은 그대로거나 저하되고 자격만 늘어난다. 말하자면, 당장에 도로에 나갈 리도 없고(나갈 수도 없고, 나갈 자신도 없고, 나갈 능력도 없고) 자격증만 생긴 꼴이니, 늘 담아두던 “내가 무슨 자격으로”의 ‘무슨 자격’에 하나의 자격이 또 추가된 셈이다.
그 따위 자격을 챙기고 나서 내가 무얼 생각했게. 면허를 따면, 말라붙은 댐을 보러 가자던 친구를 생각했지. 돌아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고백하고 있었더랬지. 하얗게, 하얗게 고하던 거지. 그러니까, 투명하게까지는 결코 말을 못하고 뿌옇고 하얀 수준에서만 서로를 드러낸 거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어떤 말이 둥둥 떠다닐까? 호기심도 못되는 궁금함에, 조급한 맘이 들어, 기다림에 지칠까 봐 나는 면허를 땄네.
친구여 나도 다닐 수 있는 길이 하나 늘었다. 또 돌아보니, 우리는 만나면 꼭 말라붙은 댐을 봤었네. 함께 종로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하고, 그렇게 걷다가 폐허가 된 방을 발견하고, 참 좋아했었다. 우린 손도 잡지 않고 어깨동무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보폭만큼의 거리를 두고 절망스러운 무언가를 같이 바라본다는 게, 퍽도 따듯했던 것 같아.
면허를 땄다. 친구야. 나라가 허가해 줬다는 거다. 언제부턴가 넌 나를 이름으로 불렀는데. 허가도 없이. 허가도 없이. 나는 상관도 없고 상징만 있는 면허를 품에 안고, 네 이름을 떠올리는 거다.
눈물과 바나나 우유. 빙그레. 머그잔과 캡모자. 국어어문규정집. 제임스블레이크와 김흥국. 레비나스와 황지우. 식물의 사유와 동물의 생존. 바나나 우유. 막걸리. 편의점과 캔맥주. 막걸리.
스러움 스러움 스러움
2021. 5. 1. oj_taz(오제혁)